1절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5절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앞선 6장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고 그분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노아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말 그대로 태초의 인간의 온전함을 회복한 모습이지요.
오늘 말씀의 1-4절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5-9절은 노아의 순종입니다.
순종하는 노아는 태초의 인간으로서의 권위도 회복합니다.
9절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며
이름을 지어달라고 아담에게 나아왔던 수많은 동물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동물들은 철저하게 인간을 따르는 존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다스릴 권한을 인간에게 위임해 주셨지만,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잃어버린 그 권위를 노아의 시대에 잠시 다시 회복하는 모습입니다.
수많은 동물을 방주로 데리고 들어오다니요, 거대한 방주를 짓는 것이 오히려 쉽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 많은 동물을 무슨 수로 몰고 들어옵니까? 설득이라도 하겠습니까? 노아는 눈앞이 캄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창조 때의 권위를 회복하자 일은 쉬워집니다.
권위는 스스로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나보다 더 권위 있는 존재가 나에게 위임해 줄 때 오히려 일하기가 더 쉬워집니다.
내 삶의 수많은 혼돈을 무슨 수로 가지런하게 잡습니까?
그러나 내가 하나님과 동행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살 때, 내 삶의 질서는 자동으로 잡힐 줄로 믿습니다.
7절 아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9절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며..
세상 모두가 몰살당하게 생긴 마당에 노아와 그의 가족만 예외가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의로움을 인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의로움은 그만 살리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가족을 살립니다.
그의 가족만 살아남은 것이 아닙니다. 노아의 방주로 들어간 모든 짐승들 또한 살아남았습니다.
나의 의로움, 내가 하나님과 동행하고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은
당연히 나를 구원하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나를 살리고, 나의 가족을 구원하고, 내 주변의 모두를 구원하는 거룩한 영향력이 됩니다.
8절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은...
이때는 율법이 있기 전인데 정결한 짐승, 부정한 짐승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었을까요?
지난번에 5장을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이미 제사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 방법은 누가 정해주신 것일까요? 당연한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이처럼 우리는 창세기 곳곳에서 홍수 시대의 사람들과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지키며 살았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아 이스라엘에게 전달할 때는
그 누구도 모르던 새로운 것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던 것을 체계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율법과 제사의 본질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그분과 동행하는 ‘의(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옳다 여기시고 의를 통해, 의인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어가십니다.
11절 그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12절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이제 본격적으로 홍수가 시작됩니다.
큰 깊음의 샘은 땅 속 깊은 곳에 있는 큰 물줄기를 말합니다. 큰 지하수 같은 개념이라고 상상하셔도 됩니다.
하늘의 창이 열린다는 말은 창세기 1장의 창조 두 번째 날
궁창을 만들기 위하여 하나님이 하늘 위로 올려놓으신 물이 있었는데 그 물이 쏟아져 내렸다는 말입니다.
원래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손 놓고 관람하고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마치 운전자가 차량에 시동을 걸고 손 놓고 가만히 있지 않고
끊임없이 앞뒤 좌우를 살피며 운전하는 것처럼 이 우주 또한
끊임없이 돌보시며 운행하고 계십니다. 질서를 주십니다.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질서의 은혜 안에서 피어나는 꽃입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는 그 질서를 거두십니다. 무서운 심판입니다.
그래서 홍수는, 심판은, 새로운 창조입니다.
원래 모든 것이 섞여서 뒤죽박죽인 태초의 혼돈을 하나님께서 가르시고
질서를 주신 것이 창조인데 홍수의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질서를 잠시 거두시고 다시 혼돈을 허락하십니다.
지구상의 위 아래의 물이 다 터져버리면서 (22절)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은 전멸합니다.
이렇게 무서운 심판이 있기 전에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16절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더라
노아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모든 정해진 동물들이 방주로 들어갔고 하나님께서 뒤에서 문을 닫으셨습니다.
이미 비가 쏟아지고 있고 이제 이 비는 무서운 홍수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문을 열지 않으시면 방주에서 못 나가고 죽는 것 아닌가, 노아는 생각했겠지만
거꾸로 이 방주는 죽음이 아니라 구원의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노아처럼 그 하나님과 동행하심으로써
심판을 향해 달려가는 이 세대에 구원의 방주 역할을 하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통해 가정이, 학교와 직장이, 이 지역사회와 나라와 민족이
구원받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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