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조상의 행렬이 등장합니다. 여러 사람의 일대기가 각자 펼쳐지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공통된 시작과 전개를 볼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시작하며 ‘순종했다, 나아갔다’로 이어지는 그들의 삶입니다.
아브라함은 위대한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런데 그의 삶을 대표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는 역설적으로 나그네입니다.
사실 믿음의 선조들이라고 하는 이들의 삶이 모두 불확실한 것과의 동거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시작일 뿐이며 모든 사람이 한결같이 그렇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면서 어찌 이렇게 불안하게들 살까요? 11장은 이러한 나그네 인생 대행진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왜 나그네를 말할까요?
지금, 이 편지를 받아보는 유대인들, 즉 예수님을 영접한 유대인들은
원래 자기가 태어날 때부터 있던 공동체를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정통 유대인들에게 왕따당하고, 괴짜 취급당하고, 심하면 멸시와 강제분리,
더 심하면 바울처럼 물리적인 테러를 당하는 것도 각오해야 했습니다.
그들의 심령은 고향을 떠나 정착할 그곳을 찾아 헤매는 나그네와 같았습니다.
우린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영적으로 얼마나 두렵고 불안했겠습니까?
그런 그들에게 히브리서 저자는
‘너희만 이런 고생을 하는 것이 아니다. 너희의 선배들이 모두 같은 길을 걸어왔고 믿음으로 걸어왔고 순종하며 걸어갔고 구원받았다!’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그네입니다. 흔들리며 걷는 길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흔들리며 길을 걷는 사람들 아닙니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무엇 하나 이제는 예측 불가능의 세상입니다.
불과 20세기만 해도 ‘다음’에 대한 예측이 가능했습니다. 10년 단위, 1년 단위로 예상할 수 있었던 것도 큰 흐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당장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의 충격파는 여태껏 우리가 알고 있던 세상을 유물로 바꿔버릴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치 지도자들의 폭주, 경제 시장의 불안전성, 한탕주의의 만연,
고조되는 전쟁의 위협(실제로 너무나 오랫동안 불안한 평화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등장 등 불안한 것투성이입니다.
영적인 영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대 진리라는 것은 없어,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 네 느낌이 중요해 라고 외쳐대는 세상의 소리가 난무하고,
이제는 뉴스마저도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 분간조차 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시대입니다.
교회는 대체 무엇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신앙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조차 일치가 되지 않고 갑론을박입니다.
이래서야 조국은 언제 복음화하고, 복음 통일은 언제 하고, 세계 선교는 언제 할지 깜깜합니다.
이렇게 불안한데도 우리는 또 길을 걷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조상들이 그렇게 했던 그것처럼 삶으로 믿음을 증명하는 길입니다.
(7절) 노아는 보이지 않는 (= 아직 다가오지 않은) 홍수의 경고를 받았습니다.
(8절) 아브라함은 갈 곳을 알지 못한 채 고향을 떠났습니다.
(11절) 사라는 나이가 많아 단산했으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13절) 이 지점쯤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그들 모두가 외국인이고 나그네였다고 한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17절) 다시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이삭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을 확실하게 받았기 때문입니다.
(20절)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해 축복합니다. 눈앞에 있는 무슨 일이 아닙니다.
(21절) 야곱도 요셉의 아들을 축복합니다. 믿음으로 축복합니다.
자기의 삶에서 쌓인 것이 있기에 죽음의 순간에도 빛을 발휘합니다.
(22절) 요셉도 그가 죽을 때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출애굽을 예언합니다. 까마득한 미래이지만 믿음으로 예언합니다.
(23절) 모세의 부모는 왕의 명령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입니다.
(25절) 모세도 눈에 보이는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선택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26절) 상 주심을 바라보는 믿음입니다.
(27절) 이렇게 믿음으로 시작한 출애굽은 본격적인 믿음 대행진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인데 보이는 것처럼 역사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모시자 눈에 보이는 위대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28절) 장자를 죽이는 천사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것처럼 인정하니 구원을 받았습니다.
(29, 30절) 그들은 바다를 육지처럼 건넜고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31절) 라합이 정탐꾼을 영접한 것을 가리켜서 순종이라고 하는데 이 순종의 시작도 믿음입니다.
이 많은 사람들의 삶이 확실함, 든든함, 믿을만함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불안합니다. 불확실합니다. 당장의 미래도 어떻게 될지, 자기 앞가림 하는 것 하나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제 나눈 것처럼) 그들의 삶을 봅시다. 그들이 믿음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그들의 결정, 그들의 행동, 그들의 삶이 곧 그들의 믿음 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믿음의 선조들은 다 믿음을 따라 산 사람들이고 믿음을 따라 죽은 사람들입니다.
(13절) 비록 약속을 받지 못했으나 멀리서 보고 환영했으며,
더 나은 본향, 곧 하늘에 있는 영원한 땅을 사모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비록 살아서 하나님이 약속하셨던 것들의 모든 성취를 볼 수는 없지만, 그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믿었습니다.
(16절) 이에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을 인정하셔서 자신을 가리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세상은 쉴 새 없이 바뀌지만 그들의 이름은 영원히 남았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여정에서 영원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엄청난 영광입니까?
우리는 한 치 앞도 못 봅니다. 이기적입니다. 두려움과 의심이 많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기에 본성을 거스르지 않고서는 성경이 말씀하시는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우리를 구원합니다. 믿음은 인간을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듭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선조들의 뒤를 이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구원의 행렬에 동참하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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