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오픈도어선교회(열린문선교회)에서는 해마다 50개의 척도를 분석해서 기독교 박해보고서를 발표합니다.
2024년도 자료를 보면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전 세계에서
- 목숨을 잃은 이들이 약 5,000 명,
- 물리적인 공격을 당한 교회가 약 14,000 교회,
- 폭행을 당한 교인이 약 42,000 명,
- 신앙이 있다는 이유로 정착을 못 하고 방랑하는 이재민이 약 300,000 명입니다.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한 조사와 그 조사를 종합해서 박해지수가 높은 나라부터 낮은 나라까지 순위를 매기는데
북한은 몇 년째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뒤를 이어 파키스탄, 이란, 아프가니스탄, 인도, 사우디 같은 나라가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붙잡고 여러분이 기도하실 때 실제로 박해당하는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위해 특별히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시간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도 박해와 고난과 두려움을 마주하고 있던 성도들은 있었습니다.
사도는 그들을 위로하며 (12절)‘사랑하는 자들아’ 하고 부릅니다.
교회와 성도를 애타게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인 줄로 믿습니다.
(12절)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고난의 목적은 소멸(掃滅)이 아니라 제련(製鍊)입니다.
a. 불에 타면 보통은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b. 그러나 금속은 다릅니다. 다루는 사람이 목적과 기술을 가지고 금속을 불에 노출하면
c. 금속은 제련되며 그 가치가 더욱 올라갑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시는 고난도 마찬가지입니다.
a. 세상은 고난 앞에서 불타버립니다. 재앙 앞에서 쓸려갑니다. 사라집니다.
b. 그러나 교회는 다릅니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분명한 뜻과 능력을 가지고 교회를 고난 가운데 계속 노출하시면
c. 교회는 단련되며 생존을 뛰어넘어 더 가치 있는 존재로 세상 가운데 드러납니다.
(13절)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의 영광이 곧 교회의 영광, 우리의 영광이 된다는 위대한 선언입니다.
그 비전이 있기 때문에 사도는 오히려 즐거워하라고 권면합니다.
시험이 올 때 즐거워하다니, 그것이 어떻게 쉬운 일입니까?
우리는 여기에서 만사형통(萬事亨通)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만약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고난이 없고 만사형통만 있다면
우리는 사도의 말대로 (12절) 이상하게 여기고 시험에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사도의 말은 무엇입니까? 본문 그대로입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13절) 고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 뛰어들라, 피하지 말라, 즐거워하라는 말입니다.
세상은 정반대이지 않습니까? 리스크가 있으면 예측하라, 도망치라, 책임지지 말라입니다.
심지어 그것을 잘 처세하는 것이라고 추켜세웁니다.
그런데 사도의 말은 정반대입니다.
우리가 고난당하는 것은 개인의 고난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고난은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는 전주곡입니다. 거기에 사도는 한술 더 뜹니다.
(14절)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여기에서 우리가 잘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고난의 성격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입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당하는 치욕이고 그리스도 때문에 당하는 손해여야지만 진정한 고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들이 당한 무수한 고난과 초대교회의 고난도 전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벌어진 일 아닙니까?
사도는 이 부분을 19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다고 표현합니다.
그와 다르게 우리 개인의 욕심이나 오판, 실수 때문에 벌어지는 어려움은
성경적인 의미에서의 고난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구분점을 사도는 (14절) 하나님의 영이 고난 당하는 이들 위에 계신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고난을 생각해 봅시다.
-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어려움입니까?
- 이 고난을 당할수록 성령의 임재를 더 강하게 느낍니까?
-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십니까?
- 그분의 음성이 갈수록 더 또렷이 들립니까? 승리하리라는 확신에 사로잡히십니까?
그러면 틀림없습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지금 나의 괴로움을 가리켜 고난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예수와 아무 상관이 없는 괴로움인데 거기에 무슨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있고 성령의 임재가 있겠습니까? 나 혼자 괴로울 뿐입니다.
사도는 그런 고난을 가리켜서 (15절) 그런 고난은 받지 말라고 부끄러운 고난이라고 명확하게 구분을 짓습니다.
살인, 도둑질, 악행, 남의 일에 간섭하는 것의 본질은 모두 내 욕심입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16절)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난 자체는 물론 자랑하거나 권장할 만한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으로서 받는 고난은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심판과 영광의 날이 멀지 않았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17절)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사도는 성도가 고난 당하는 것, 교회가 고난 당하는 것을 심판의 시작으로 봅니다.
구약성경에서도(에스겔 9:6 / 말라기 3:1-3)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난 당하는 것을 심판의 시작으로 보는 시각이 있었습니다.
이 고난의 목적은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멸망이 아니라 연단이고 훈련입니다.
(18절)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불 시험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두렵고 떨리는 일인데
신앙이 없는 이 세상은 그 심판으로부터 어떻게 견뎌내겠습니까?
(19절)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믿고 의지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고난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고, 이 고난 가운데 의지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의탁할지어다’로 어렵게 번역된 이 단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마지막 순간에‘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의탁하나이다’ 하신 것과 같은 단어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무엇을 더 할 수 있겠습니까? 뒷일을 완전히, 100% 책임져 달라는 주님의 모범입니다.
말세입니다. 세상이 혼란스럽고 우리의 삶이 버거운 것은 사실이나
사도는 그럴수록 더욱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믿음이 필요하다고 웅변합니다.
그 사도의 모범을 따라,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을 따라
예수 때문에 당하는 영광스러운 고난의 때를, 말세를 견뎌내어 반드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번호 | 제목 | 설교자 | 등록일 | 조회수 | 첨부 파일 |
|---|---|---|---|---|---|
| 2834 | [12월 7일] 부르심과 택하심을 입은 자들 (벧후 1:1-11) | 전소리 | 2025-12-08 | 9 | |
| 2833 | [12월 6일] 전교인월삭새벽기도회 | 최종운 | 2025-12-06 | 13 | |
| 2832 | [12월 5일] 제사장 직분을 맡은 사람들 (대상 24:1-31) | 최종운 | 2025-12-04 | 12 | |
| 2831 | [12월 4일] 레위인을 우선 세우다 (대상 23:1-32) | 최종운 | 2025-12-03 | 13 | |
| 2830 | [12월 3일]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벧전 5:1-14) | 손병호 | 2025-12-03 | 15 | |
| 2829 | [12월 2일]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벧전 4:12-19) | 손병호 | 2025-12-02 | 19 | |
| 2828 | [12월 1일]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벧전 4:1-11) | 손병호 | 2025-12-01 | 19 | |
| 2827 | [11월 29일] 다음세대에게 물려줄 것 (대상 22:1-19) | 최종운 | 2025-11-28 | 22 | |
| 2826 | [11월 28일] 넘어짐의 자리에서 은혜의 자리로 (2) (대상 21:18-30) | 최종운 | 2025-11-27 | 26 | |
| 2825 | [11월 27일] 넘어짐의 자리에서 은혜의 자리로 (대상 21:1-17) | 최종운 | 2025-11-26 | 22 | |
| 2824 | [11월 26일] 절대 선, 절대 복의 근원이신 주님 (벧전 3:8-22) | 전소리 | 2025-11-26 | 23 | |
| 2823 | [11월 25일] 성도의 가정 (벧전 3:1-7) | 전소리 | 2025-11-25 | 26 | |
| 2822 | [11월 24일] 험한 세상 속 성도의 삶 (벧전 2:11-25) | 전소리 | 2025-11-24 | 27 | |
| 2821 | [11월 22일] 승리가 다음세대에게 이어지다 (대상 20:1-8) | 최종운 | 2025-11-21 | 26 | |
| 2820 | [11월 21일] 담대함은 경험에서 나옵니다. (대상 19:1-19) | 최종운 | 2025-11-20 | 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