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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인간의 치우친 사랑 (창 37:1-11)
 
[6월 29일] 인간의 치우친 사랑 (창 37:1-11)
2026-06-29 00:00:00
전소리
조회수   21

창세기에서 주목하며 봐야 하는 사람들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입니다.


우리가 지금 시점에서 누구의 시대를 보고있나요?

야곱의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만, 앞으로 함께 살펴 볼 내용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듯, 

야곱은 장성한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고 나서 7년의 풍년, 이후에 7년 흉년의 시간도 다 버팁니다.

야곱의 삶은 아직 한참 더 남았지만 창세기저자는 거의 모든 분량을 야곱에서 요셉에게 넘긴 상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세우시고 그 삶 가운데 역사하시며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피조물로 지음받았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이고 하나님을 드러내는 도구입니다.

하나님이 우릴 지으신 목적대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며

우리의 삶이 하나님 뜻대로 타인(비그리스도인)에게 

진정한 삶의 표본이 될 수있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손에 들린 도구이면서 동시에 그 도구로서의 고유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뿐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권한이 도구인 내게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운 일입니다.

사용자의 손에 들린 도구가 고유한 정체성을 가지고 사용자의 강력한 의지가 아닌

그 모든 것을 도구의 의지대로 쓸 수 있게 한다는 것,

이 모든게 결국 사용자이신 하나님의 의지 입니다. 

 

왜 이렇게 하실까요? 

많은 반론을 거듭하면서 논쟁할 수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도구가 자기 마음대로 살더라도 결국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이제부터 요셉의 삶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묵상하면서

더욱 더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알기를 간구하기 원합니다.

 

37장 1절은 야곱의 가정은 35장에서 이삭이 말년을 보낸 

가나안 땅 헤브론 일대에 정착했던 것을 상기시킵니다. 

앞장에서 에서의 계보를 정리함으로서 에서와 야곱, 두 형제 간 문제도 마무리 되었습니다.

야곱은 도망자였습니다. 떠돌이의 삶, 나그네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하나님의 약속대로 아버지와 함께하며 고향으로 돌아와 지냅니다.

참 많은 우여곡절끝에 나그네의 삶이 마무리 된 것 처럼 보입니다. 

야곱 자신의 삶의 전성기는 지났습니다. 

그래서 37장에서는 야곱의 아들들이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의 자녀들이 여럿이지만 그 중에서도 부각되는 자녀는 ‘요셉’입니다. 

야곱이 두 아내를 얻었는데, 레아와 라헬 중 라헬을 더 사랑했고

그 라헬을 통해 얻은 아들이 요셉입니다. 

나머지 열 한 아들은 우리가 텍스트를 보고 이해할 때 참 안타깝지만 주변인 같습니다. 

스포트 라이트는 오직 요셉만 비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보기 시작한 37장부터 창세기가 끝나는 50장까지 요셉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우리가 명확하게 알지 못하면 이 모든 줄거리를 다 암기 하고 있다 한들

저자이신 하나님의 의도는 절대로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야곱이 편애하고 유독 사랑했던 요셉이 모든 형들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요셉이 세상의 지도자가 되어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보여줍니다.

이렇게보면 세상의 관점, 세상의 방식으로 본문을 읽어내려간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이 본문을 본다면 하나님의 구원의 도구로 쓰임 받고 있는 요셉,

그리고 야곱의 모든 자녀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공동체이고, 민족이며, 

나아가 이 땅에 세우신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교회로서의 이스라엘이 보입니다. 

 

그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어가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말씀 속에서 ‘나’라는 인생에게 말을 걸어오시는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맡겨드리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야곱의 삶의 전성기는 마무리 되어가는 것을 지금까지 봤지만

오늘 본문에서 등장하는 야곱의 아들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은

야곱이 자신의 삶에서 아직도 해결 하지 못한 가정의 불협화음이 자녀세대까지 

이어지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짚어주시는 단어는 바로 사랑입니다.

 

3절에서 야곱이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 라헬에게서 태어난 첫 번째 아들 요셉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 사랑은 완전한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레아의 자녀이든, 라헬의 자녀이든 모두가 한 아버지 야곱, 자신의 자녀들인데,

인간적인 시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랑의 기준으로 바라보는 왜곡된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자녀들을 갈라놓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하는지를 

아버지 야곱이 지금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기준이 왜곡되어 있으면 이토록 큰 갈등과 전쟁같은 일상이 가정에서 나타납니다.

사랑의 기준이 왜곡되어 있으면 이런 일들이 교회에서도 나타납니다.

사랑의 기준이 왜곡되어 있으면 세상이 병들어갑니다. 

 

이렇게 야곱이 자기 두 아내에게 행하였던 치우친 사랑이 자녀들에게도 이어집니다.

그래서 야곱은 자기 눈 앞에 많은 자녀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요셉만을 사랑하며 아꼈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양을 치도록 하고 요셉은 형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아버지에게 일러바칩니다.

거기에 채색옷을 따로 지어 입힙니다. 양치는 형들은 늘 땀으로 찌든 옷을 입었을 겁니다.

그것을 본 형들이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를 원망할 수도 없습니다.

아버지로의 모든 사랑을 독차지하는 요셉을 도저히 좋은 시선으로 볼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우리가 간절히 구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 나로 하여금 진정한 사랑을 행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치우칠 수밖에 없는 내 사랑의 기준은 주님께 내려놓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절대 사랑의 기준으로 바라봐주셔서 살려주신 것처럼

나 또한 내 인생에 허락해주신 모든 이들을 하나님의 절대 사랑의 기준으로 

바라보는 제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라고 간구하고

그런 사랑을 마음껏 행하는 축복을 누리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4절을 보면 형들과 요셉이 어느정도로 거리감이 있는지를 말해줍니다. 

형들이 요셉을 편안하게 말을 걸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편안하게로 쓰인 원어가 샬롬입니다. 

그런데 부정을 뜻하는 동사가 붙어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무슨 일이든 형들과 요셉의 대화 속에서는 결코 다정스러움은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거기에 5절에서 11절을 보면 요셉이 꾼 꿈은 불난 형들의 마음에 부채질을 한 격이 되었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형들의 곡식 단이 요셉의 단을 둘러서서 절하는 꿈”

해와 딸과 별 열한 개가 자신에게 절한 꿈”을 설명합니다. 

두 가지 꿈이지만 다 같은 의미를 지닌 한 가지 꿈이라고 봐도 됩니다.

사실, 본질적으로 이 꿈 자체만 본다면 이것은 분명 하나님이 주신 꿈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아주 먼 훗날에 요셉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고 형들이 실제로 그 앞에 엎드립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서로를 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는

아무리 하나님이 주신 꿈일지라도 그 꿈 이야기가 곱게 들릴 수 없습니다.

 

요셉의 문제는 단순히 꿈을 꾸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꿈을 말하는 방식과 타이밍에 있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받았습니다. 그 자체는 분명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그러나 그 꿈을 형제들의 상처와 분노가 가득한 상황 속에서 아무 분별 없이 드러냈습니다.

사랑이 무너진 관계 속에서는 진리도 공격이 되고,

하나님의 뜻도 자랑처럼 들리며, 은혜조차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형들의 마음은 이미 닫혀 있었고, 요셉의 말은 그 마음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은 옳지만, 그 뜻을 전하는 우리의 태도와 사랑이 함께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조차 사람을 무너뜨리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이 없는 진리는 칼이 됩니다. 사랑이 없는 은사는 교만이 됩니다.

사랑이 없는 꿈은 갈등을 낳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단순히 꿈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그 꿈을 감당할 사람으로 우리를 빚어가시는 분이십니다.

요셉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애굽으로 보내시고,

고난의 시간을 통과하게 하시며, 그의 성품을 다듬으십니다.

우리 역시 아직 하나님의 손에서 다듬어지는 중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 속에도 야곱처럼 치우친 사랑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말과 태도가 요셉처럼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떤 도구로 사용하시기를 원하시는지

겸손히 묻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요셉의 이야기가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이야기 되기를 소망하며,

하나님의 손에 온전히 맡겨진 삶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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