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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6일]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창 39:1-23)
 
[7월 6일]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창 39:1-23)
2026-07-06 00:00:00
손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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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인 요셉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요셉 개인의 무용담으로만 보아서는 안됩니다.

요셉의 이야기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어떻게 지켜나가시는지를 설명하는 연장선이기 때문입니다.

 

1절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

보디발은 뼛속까지 애굽 사람입니다.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왕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인데 애굽 사람 중의 애굽 사람이었을테고

나라와 왕에 대한 충성심은 검증이 필요 없는 수준이었을 것입니다.

 

3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는 그런 그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애굽 사람 중의 애굽 사람인 보디발이 갑자기 회심해서 하나님이라도 믿게 된 것입니까? 그럴 리가 없습니다.

 

- 애굽은 이미 찬란한 문명을 뽐내고 있던 나라였고,

- 요셉은 어느 나라, 어느 부족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사람입니다.

실제로 나중에 애굽으로 이주한 야곱의 가족은 채 100명도 되지 않습니다.

부족이라고 할 수도 없는 수준입니다. 형편 없는 출신의 요셉이 믿는 신()이라고 해서

이미 애굽의 화려하고 웅장한 신들이 익숙한 보디발에게 감동을 주었을 리가 만무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런 보디발이 요셉을 볼 때

저 아이가 믿는 여호와가 그와 함께 하시고 있고, 그를 형통하게 하시는구나. 생각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영향력을 미치려면

꼭 어떤 자리를 차지해야 하나, 경제적인 여건이 되어야 하나, 를 자꾸 생각하는데

꼭 우리가 누군가에게 물질적인, 가시적인 은혜를 베풀어야 된다, 는 소리가 아닙니다.

요셉은 지금 종이지 않습니까? 말이 좋아 종이지 노예입니다.

그런데도 보디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제적 처지나, 사회적인 지위나, 직장에서의 위치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자리에 관계 없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어떤 방법인지는 본문이 침묵하기에 알 수는 없으나 우리가 갈 방향만큼은 명확해졌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길을 형통하게 열어주십니다.

를 말이 아니라 삶으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요셉의 형통함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의 하나님의 임재는 하나님의 축복을 보장합니다.

- 벧엘에서 야곱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셨던 약속은 그를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모세가 중보기도할 때도 핵심 내용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가나안 땅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꼭 함께 해달라는 간구였습니다.

- 여호수아에게도 하나님이 주신 첫 약속은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 다윗이 사망의 음침함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도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 하나님의 함께하심의 극치는 바로 임마누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구약에서 누누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이 최고의 복입니다.

모든 세상 사람이 이 복에 동감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믿는 자의 삶에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어떤 환경에서도 인도하심과 지켜주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요셉처럼 우리도 현재의 어려움과 미래의 승리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이 있을 때 현재의 어려움과 미래의 승리가 연결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을 때 책임 있는 삶이 가능해집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비현실적으로 변한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철저한 현실주의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셉을 꿈의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대단히 느슨하고 안일한 해석입니다.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라는 유명한 대사는 그의 형들이 그를 빈정거리며 한 말이지 결코 요셉의 정체성을 나타내거나 축복한 말이 아닙니다.)

실제로 요셉은 막연한 꿈의 사람이나 몽상가가 아니라

철저한 현실주의자, 지금주의자, 여기주의자라고 보아야 맞습니다.

그는 어딜 가나 성실하게 열심히 섬겼습니다. 주인의 눈에 들 정도로 말입니다.

대장군(大將軍)의 집인데, 종이 한 두명입니까?

그런데 요셉은 거기에서도 드러날 정도로 철저하게 현실을 살았다는 말입니다.

몽상가였다면,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가 차려준 채색옷이나 입고 귀여움이나 독차지하고 고자질이나 하러 다니던 어린 요셉에서

무엇인가 큰 변화가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7절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그런 그에게 또 시련이 다가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에게 유혹당하고 이를 이기는 이야기는

개인이 도덕적인 면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이 이야기를 요셉 개인의 도덕적인 자제력 따위로 해석해서는 곤란합니다.

 

실제로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못 이기는 척 받아들였다면

사모님의 총애를 받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보디발의 집안에서 자기의 입지는 다른 종들과 비교할 수 없는 자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성적(性的) 쾌락은 오히려 작은 쾌락처럼 보일 지경입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을 위해 무엇이든 해 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룻밤 쾌락이 더 강한 유혹이겠습니까, 자기 입지의 확보가 더 강한 유혹이었겠습니까?

나에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다고 예수님을 유혹한 마귀의 유혹과 결이 같습니다.

 

요셉이 당한 유혹과 그의 승리는 한 개인의 것이라기보다는

작게는 야곱 가족의 대표로서, 크게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의 대표로서 보아야 합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을 흐리고 언약에서 이탈해서 살도록 부지런히 유혹합니다.

그러나 결국 요셉은 유혹을 이깁니다.

이스라엘은 유혹을 이긴 요셉을 통해서 구원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통해서 야곱 가족을 구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승리가 곧 이스라엘의 승리이고 모든 믿는 자의 승리입니다.

 

- 그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진작에 좌절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는 일들을 계속 당하면서도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일어섰습니다.

- 그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눈 한번만 질끈 감으면 편하게 사는 길이 보장될텐데 그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9절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그는 보디발의 아내와 무슨 불륜의 후폭풍 따위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죄가 하나님 앞에 짓는 죄라는 보다 근본적인 의식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는 요셉인데 하나님이 더 예뻐해 주시면 안 됩니까?

요셉과 함께하시며 그가 하는 모든 일을 축복해 주신다는데

정작 그의 억울함(형들에게 당한 억울함, 보디발의 아내에게 당한 억울함)을 헤아리고

자유를 주시지는 않습니다. 바르게 살았는데, 더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20절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그가 실제로 원하는 것은 두루뭉술하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따위의 위로가 아니라

자유 그 자체 아닙니까?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 아닙니까누가 금의환향 시켜달라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아직 요셉의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참고 기다리고 인내하는 시간 동안 여전히 그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지키셨다는 것은 보디발의 처신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보디발은 요셉을 가만히 가두어 둘 뿐입니다. 가둔 것도 큰 벌이 아니냐 생각할 수 있는데

감히 노예가 주인의 아내를 건드렸다면 투옥이 아니라 사형감입니다.

게다가 요셉은 왕에게 범죄한 왕의 죄수가 아닌데도 왕의 죄수들을 위한 감옥에 가둡니다.

형사범이나 잡범들과 차원이 다른 고위급 죄수들이 들어가는 감옥이기에

그런 감옥은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정도면 투옥이라기보다는 격리입니다.

보디발은 아내의 말을 듣기는 했으나 결코 신뢰가 가지 않는 이 상황에서

(그의 처신을 보면 아내의 말을 100% 믿지 않는 투가 다분합니다.)

아내의 요청도 들어주고, 요셉도 지키고, 주변의 시선도 불식시킵니다.

노련한 정치인처럼 모든 결정을 내리는 보디발의 지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요셉을 지키십니다. 보디발도 대단한 사람이지만 그 위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21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보디발의 집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요셉은 또 인정을 받고,

(22) 또 모든 일의 책임자가 됩니다.

보디발이 보았던 것과 똑같은 사실이 오늘 말씀의 마지막 절에 나옵니다.

요셉은 그렇게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시고, 자기를 형통하게 하셔서 어떤 시련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그의 삶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때를 향해 한 걸음씩 나가고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나가고 있지만 그의 때는 곧 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형통하게 하신다는 것은 모든 문제가 일거에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시련이 있지만 다시 일어서고, 유혹도 있지만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며 요셉처럼 오늘 또 하루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은혜의 때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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