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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일] 택한 자가 떠나도 돌이키시는 하나님 (창 38:1-30)
 
[7월 1일] 택한 자가 떠나도 돌이키시는 하나님 (창 38:1-30)
2026-07-01 02:39:19
전소리
조회수   14

38장은 참으로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가 기록된 본문입니다. 

얼핏보면 중간에 끼어든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창세기 저자의 의도를 쉽게 알아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등장하는 야곱의 한 아들과 그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전혀 낯설지가 않습니다. 이 가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이 

이전에 묵상했던 이야기가 사람만 바뀌었지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38장은 이전에 37장에서 요셉을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아버리자고 제안한

형 유다의 잠시 아버지의 집을 떠나 가나안 땅에서의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품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지극히 세상적이면서 철저히 하나님을 인생에서 지워버린 삶을 살아갑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부한 자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를 붙들고 옳은 길로 돌이키시는 하나님의 구원이 기록된 본문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역사를 계속해서 써내려가시는 하나님을 묵상하며

우리도 주님께 온전히 붙들리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어제 요셉이 형들에 의해 실제로 죽을 수도 있었고 단순히 겁만 주고 해프닝이 될 수도 있었지만

급작스럽게도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는 예상치 못한 길고 긴 외톨이 인생이 시작되었던 것을 봤습니다. 

이렇게 노예로 팔려가도록 한 장본인은 바로 오늘 본문에서 주목하고 있는 형 유다입니다. 

유다는 참으로 머리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요셉을 어떻게하면 안보면서도 그를 죽이는 범죄는 저지르지 않을 수 있을까?

제3자 입장인 우리는 이 모든 상황을 보면서, 유다가 정말 하나님을 믿는 자가 맞는가?

어떻게 아무리 밉다해도 자기 동생을 노예로 팔아버리지? 그리고 연로하신 아버지에게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슬픔을 줄 생각을 하지? 저렇게까지 해서라도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을까? 

이런 질문을 우리가 유다의 면전에 쏟아붓고 그의 악행을 고발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하는 상황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러한 유다를 너무나도 잘 아셨습니다. 

아직 자신이 누구이며 얼마나 세상적인 존재인지를 모르는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향한 죄악된 세상에서 건져내시기 위한 은혜의 타이밍을 기다리십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유다가 

이방여인 다말을 통해 결정적인 순간에 스스로의 악함을 마주하게 하시고

결국 옳은 길로 인도하셔서 돌이키시는 것을 보여줍니다. 

 

1절에서 유다는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2절에보면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고

이어지는 본문에서 세 아들, 엘, 오난, 셀라를 얻습니다. 

 

유다 자체만 보면 원가정인 아버지 야곱의 품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의 인도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아래 살고 있는 하나님의 공동체를 벗어났습니다.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한 어떤 반성이라든지 회심의 사건이 특별히 기록되어 있지 않고,

아버지 사랑을 독차지 하고 싶어서 요셉을 사라지게 했지만 

정작 아버지는 사라진 요셉만을 부르짖으며 삶이 무너진 채 계시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어 차라리 내가 나가겠다! 이런 감정적인 결정과 함께

이 참에 내가 하나님 없이 살아보겠다 결심했을 수 있습니다. 

유다와 같이 믿음의 가정에서 삐뚤어지는 자녀들이 있는 것을 종종 봅니다.

오늘 본문에서 유다가 딱 그러한 자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과 같이 유다는 낯선 이방 땅에서 만난 이들과 깊이 교제하며

가나안 백성처럼 살아갑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이제 첫째 아들 엘이 장가갈 나이가 되어 

유다는 다말이라는 이방 여인을 직접 택해서 데려오고 결혼시킵니다.  

첫째 아들 엘이 결혼 후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그냥 두고 볼 수 없을 정도였는지 하나님께서 그 생명을 거둬가십니다. 

다말은 졸지에 과부가 되었고, 유다는 장자의 후손을 이어가고자

둘째 아들 오난에게 형의 대를 대신 이어가라고, 고엘이 되라 합니다. 

그래서 형수에게 들어가라 하지만 오난은 아버지의 뜻을 철저히 거부합니다. 

그래서 둘째도 하나님께서 거둬가십니다. 

유다에게는 이제 아직 어린 셋째 아들 셀라가 장성하여 후손을 이어가는 방법만 남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셀라가 장성하여 결혼할 만큼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유다의 아내도 죽었습니다. 

유다는 셋째 아들 셀라가 유일한 아들 셀라를 소중히 여기게 되었고 다말에게 주는 것을 미루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다말은 두고 볼 수 없었고 결국 아버지 유다를 통해 대를 잇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그래서 그녀가 한 일이 무엇입니까, 스스로를 몸 파는 여인으로 속여 

시아버지가 자신에게 들어오게 했습니다. 

이 얼마나 기가막힌 상황입니까, 막장 드라마도 이정도는 아닙니다. 

지금 유다의 인생이 얼마나 절벽 끝에 내몰렸는지를 저와 여러분이 보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스스로 똑똑한 척은 다 해놓고, 

그리고 하나님 품을 떠나서도 잘 살아보겠다고 떵떵거리며 아버지 집을 떠난 결과는 참혹합니다. 

이 유다의 삶을 보면 룻기가 떠오릅니다. 

나오미는 잠시 하나님의 품을 떠났다가, 잠시 가뭄을 피하려다가 

모압 땅에서 정착하게 되었는데 오늘 유다와 같이 모든 것을 잃은 자가 되었습니다. 

남은 가족은 며느리 룻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방 여인 룻과 함께 하나님께 돌아왔을 때 회복되었습니다. 

오늘 이 유다의 이야기는 룻기보다도 훨씬 먼저 일어난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에게는 어쩌면 룻기보다도 유다가 하나님 품을 떠났던 오늘 본문이

어쩌면 더 익숙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난 후 3개월 후 며느리의 배가 불러오자 행음함이 드러나 불사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죽을 처지가 된 다말은 시아버지를 속여 몸 파는 여인일 때 

유다로부터 받은 담보물인 지팡이과 도장과 끈, 지팡이를 보여줍니다. 

 

그 담보들을 보았을때 유다는 그제서야 자신의 지난 날의 모든 죄와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동생을 노예로 보내놓고 자신은 아버지에게 사랑받고자 

채색옷을 찢고 에 피를 묻혀 아버지에게로 가져갔던 유다입니다. 

참으로 위선적이었던 지난 날의 죄가 생각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받지 못하자 아버지 품을 떠나버렸던 철부지 말 안듣는 고집스런 불효자의 모습, 

하나님께는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거부했던 모습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이제서야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이방 며느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를 알게 하실 뿐만 아니라 구원의 통로로 사용하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진정한 회개의 고백이 오늘 본문 26절입니다.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가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유다의 지금까지 인생 가운데 그가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사람앞에서 한 죄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에 그는 총리가 된 아우 요셉 앞에서도 진솔한 고백을 통해 동생 요셉 앞에서도 용서받는 자가 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귀한 도구로 쓰임받은 다말은 

나중에 예수님의 계보에 당당히 오르는 것을 마태복음 1장을 통해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고 세상 속에서 세상보다 악한 삶을 살지라도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하심과 애정을 통해 그 인생 속에 개입하시고 

반드시 아버지 품에 돌아오도록 해주시는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에도 내가 너를 반드시 구원한다고 약속의 증거, 담보로서

예수님을 허락해주신 것을 알기 원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의 길이시며, 십자가 사건 외에는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증거가 없음을

저와 여러분이 오늘도 기억하고 그 사랑과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며 

내 안에 살아 역사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인생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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