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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8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출 20:1-11)
 
[9월 28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출 20:1-11)
2026-09-27 15:20:22
손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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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절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하나님은 십계명을 시작하시면서 자신이 이스라엘과 어떤 관계인지부터 밝히십니다.

첫 계명은 나머지 아홉계명의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과의 상호 관계를 밝히심은 하나님의 방향 설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계명이다, 율법이다, 라고 하니 무엇인가 답답하고 목을 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첫 번째 계명에서 하나님의 본심은 바로 드러납니다.

그분은 우리와 관계를 맺고 싶으신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아무런 (인간적인) 관계가 없이 그냥 맺는 계약도 있습니다. 근로계약이나 매매계약 같은 것이죠.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금 이스라엘 백성과 맺고 싶으신 계약은 완전히 다릅니다.

 

관계 그 자체입니다. 그렇기에 계약을 시작하기 전에

내가 너에게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너는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부터 밝히고 들어가십니다.

 

십계명은 결혼계약과 같습니다.

결혼한 사람들이 마음에 가득한 사랑에서 결혼의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않는다면 그것을 진정한 혼인이라 할 수 없는 것처럼,

십계명을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아닌 마지못해 이행하는 의무감으로 준수하게 된다면

하나님이 이 계명들을 주신 근본적인 취지를 상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계약은, 언약은 사랑입니다.

계명은 그 사랑의 입구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고 싶은 것은

규칙을 잔뜩 세워 우리를 답답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나누고 싶으신 것입니다.

 

3절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이 문장은 직역하면 ‘너와 내 얼굴 사이에는 아무 것도 두지 말라’입니다.

히브리어 [파님]에 해당하는 이 단어는 얼굴은 물론이고 한 사람의 존재 자체를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얼굴을 우리에게 비추어 주십시오. 하는 기도도

하나님의 임재를 원합니다. 로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연인이나 부부가 서로 얼굴을 바짝 붙이고 있는 친밀함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얼굴이 불쑥 둘 사이에 끼어들면 얼마나 이상한 그림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일편단심(一片丹心)입니다.

‘나와 너 사이에는 아무도 없어야 해.’ 강렬한 사랑의 온도가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은 인간처럼 사랑한다면서 재고 계산하고 밀고 당기고 따위 하지 않으십니다.

처음부터 직진하십니다. 대놓고 신부인 이스라엘의 일편단심을 요구하십니다.

결혼하는 부부가 오직 상대 배우자만의 사랑만을 원한다고 하면 그것이 집착입니까?

말도 안 됩니다. 배우자가 나만 바라봐주기를 원함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너 말고 다른 사람도 사랑한다. 혹은 너 말고 다른 여자들도 나를 사랑해 주기를 원한다.

이런 얼빠진 소리를 한다면 크게 지탄받고 매장당할 수도 있습니다.

(아직 우리 인간의 세상은 그렇습니다. 동물의 세계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서 큰일입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일편단심이 없습니다. 동물은 그런 것을 원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의 행동을 짝짓기라고 하지 사랑이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욕구와 본능일 뿐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사랑은 욕구로만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종족 번식을 위해서만 사랑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욕구의 충족과 종족의 번식은 사랑을 하는데 있어서 따라오는 부수적인 결과물일 뿐입니다.

동물은 욕구가 채워지고 종족이 번식하면 그것으로 끝인데 말입니다.

 

바로 이 지점이 인간을 동물보다 훨씬 고등한 존재로 만듭니다.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인간은 욕구만 채워진다고 만족하지 않습니다.

자식이 다짜고짜 많이 생겼다고 성공한 인생이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인간은 사랑을 원합니다. 주기를 원하고 받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말씀에서 보는 하나님은 바로 그런 사랑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같은 형상입니다.

 

4절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하나님께서는 이 부분에서 우상의 본질을 말씀하십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우상과의 관계는 인격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내가 이만큼 제물을 바치고 잘해드릴테니

나에게 이러이러한 복을 주시오. 식의 거래만이 있을 뿐입니다.

거래는 사랑이 아닙니다. 세상은 자꾸 사랑을 거래로 바꾸려 합니다.

그렇게 해서는 양쪽이 다 망가집니다. 그런데도 자꾸 (사랑으로 포장된) 거래하려고 합니다.

그 본심은 ‘나를 위해서’입니다. 나를 만족시켜 줘. 나를 사랑해 줘. 나를 행복하게 해줘.

같은 말초적이고 원초적인 본능, 욕구 같은 이야기들입니다.

3절에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얼굴의 사랑, 독점의 사랑과는 거리가 멉니다.

 

하늘도 땅도 물도 하나님의 피조물일 뿐입니다.

우리의 올바른 예배의 방향은 창조주를 향해 있어야 하지, 피조물을 향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그럴 능력도 없고 애초에 그럴 의지도 가질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절절한 심정으로 우리를 향해 외치십니다.

참 생명이 여기에 있다고, 그 생명이 너희를 사랑하고 있다고 부르고 계십니다.

그 사랑을 받아들이고 영원히 살자는 영생의 제안을 하고 계십니다.

4절의 우상 금지 계명을 무엇을 하지 말라. 의 부정형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독점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뜨거움으로 보아야만 적용도 가능하고 은혜도 있습니다.

 

5절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절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이 말씀의 핵심은 숫자가 아니라 대조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며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에게 임할 은혜는 영원합니다.

그러나 나를 위한 우상을 만들며 나를 위한 삶을 사는 사람에게 임할 심판은

분명히 있겠지만 잠시라는 것입니다. 언제나 사랑과 자비가 죄와 심판을 이깁니다.

 

7절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이 함부로 여김을 당하는 것도 원하지 않으십니다.

자신의 신격을 모독당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십니다.

그러나 그 근거는 단순한 자존심,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알기를 원하시는, 우리의 사랑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 중 사실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말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여긴다는 것은 대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누구인지를 우리가 명확하게 알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이 나를 정확하게 알아주기를 원합니다.

오해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에

하나님의 이러한 모습을 우리가 그대로 물려받았다고 보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사명을 맡길 때 출애굽과 구원의 의지와 함께 당신의 이름을 계시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이름은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무엇을 하시는 분인지를 드러내는 이름입니다.

 

8절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여깁니다.

그분이 누구이신지도 모르고 그분이 무슨 일을 하시는지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나를 위한’ 우상을 만들 뿐입니다. 애굽의 거대한 공사를 생각해 봅시다.

그 밑에서 신음하던 수많은 이스라엘 노예들을 생각해 봅시다.

우상의 크기만 바뀔 뿐이지 우상의 본질은 나를 위한 것입니다.

오늘날이라고 다를 것이 있습니까? 나를 위해 산다고 쉴 새 없이 일합니다. 혹은 남을 일하게 만듭니다.

 

안식일이라는 개념은 고대인들에게는 충격적인 개념입니다.

왕을 제외한 백성은 모두 왕조를 떠받드는 신하일 뿐입니다.

왕조를 위해 일하는 것만 있을 뿐이지 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처럼 하나님의 의도에서 완전히 이탈해 버린 세상을 향해 쉬라고 명령하십니다.

 

11절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쉬는 것은, 누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세상을 만드셨을 때의 최종 목적입니다.

마치 아가(雅歌)에서 동산으로 와서 나와 함께 즐기고 누리자. 신부를 부르는 신랑의 부드러운 음성처럼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의 4계명까지를 통해 오늘 우리를 부르십니다.

구원과 영원한 복락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이 모든 것의 동력은 그분의 사랑입니다. 인애입니다.

 

이 말씀 붙잡고 기도하실 때

계명이 나에게 족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고백이 되게 하소서.

나도 그 사랑의 능력에 연결되게 하시고

세상 가운데 그 사랑의 능력, 구원의 능력을 흘려보내는 구원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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