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절 뭇 백성이 우레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우레와 번개, 나팔소리와 연기는 하나님의 오심을 의미합니다.
그 하나님의 오심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보인 반응은 두려움이었습니다.
산에는 백성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경계선도 쳐 놓았고 백성들은 진 중에 있었습니다.
이미 산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그들이 모두 이렇게 공포에 사로잡힐 정도였다면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정말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19절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오죽 두려웠으면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지 말고 모세가 중재자로 서달라고 합니다.
물론 모세는 이미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백성의 말의 요지는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에 노출되어 직접 그분의 음성을 듣고
계시를 받는 것은 죽음에 이를 정도로 두려운 일이니
모세가 계시를 받아 자기들에게 전달해 달라’는 말입니다.
20절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모세는 백성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평소에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왜 두려워합니까?
그들은 아직 이방인들과 전혀 구별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고
하나님 보시기에도 무엇인가 벌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는 소리입니다.
그들이 경건하게 살아왔다면, 이전에도 하나님과 교제를 계속 해 온 사람들이라면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기쁨과 교제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마치 태초에 밤이 되면 동산에 내려오신 하나님을
남자와 여자가 거리낌 없이 함께 맞이하고 거닐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21절) 백성은 두려워서 벌벌 떨고 있는데
모세는 아랑곳 않고 심지어 흑암으로 걸어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이 계시기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20절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로 오시는 이유에 대해 모세는 설명합니다.
이 설명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것이 물 시험이 되었든 불과 같은 시험이 되었든
정결하게 정화(淨化)하는 과정을 반드시 지나야 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구약에서는 전리품이 여호와의 불을 통과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겠고
신약에서는 세례가 있겠지요. 우리에게는 예수 십자가의 보혈이 있습니다.
그렇게 시험을 통과하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단계까지 나아갈 수 있겠지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은 그분을 단순히 무서워한다. 벌벌 떤다. 공포에 질린다.
이런 개념이라기보다는 (모세가 명확하게 알려준 것처럼) 범죄하지 않는 삶입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멀어진 관계입니다. 그러니 범죄하지 않는다고 하면
그의 삶이 하나님과의 깊고 친밀한 교제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로 들어간다면 그분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고
(1-4계명) 그분의 마음을 알게 된다면 (5-10계명) 이웃도 귀하게 여기게 될 것입니다.
22절 내가 하늘로부터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너희 스스로 보았으니
이 말씀은 계명이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았다는 사실의 강조입니다.
인간으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23절) 하나님과 비길 수 있는 존재가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그런 우상을 만드는 목적이 이미 23절 너희를 위하여 나를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싫어하시고 미워하십니다.
이방 종교가 신상을 만들고 음란하고 자극적으로 섬기는 이유는
자기를 위하여, 자기 만족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우상숭배는 결과적으로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는 올무가 됩니다.
20장 이후부터는 다소 긴 분량의 언약서가 따릅니다. 무려 23장까지 이어집니다.
이 내용은 십계명을 이스라엘 백성의 삶 전반에 걸쳐 적용해서 풀어낸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언약서의 서론에 보란 듯이 제단에 관한 규정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그분은 다른 이방신들과 비교할 수 없으며
그분과 교제하는 것이, 그분을 예배하는 것이 이스라엘이 누리는 참된 목적이며
이 많은 언약을 제정하는 이유가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시기 위함입니다.
24절 내게 토단을 쌓고 흙으로 단을 쌓으라는 말씀입니다.
25절 네가 내게 돌로 제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제단을 돌로 만들 때 반듯하게 다듬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26절 너는 층계로 내 제단에 오르지 말라 계단이 필요할 정도로 큰 제단도 만들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모든 명령의 핵심은 제단을 이방인들이 우상 만드는 것처럼 만들지 못하게 하심입니다.
제단 자체가 우상이 되는 것을 하나님은 경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방법대로 크고 웅장한 의식이나 화려한 무엇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직 당신의 백성이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그분의 의도였지만
이스라엘은 수없이 그분의 의도를 빗나가서 엉뚱한 자리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 시선이 가 있었습니다.
예배의 본질이 흐려질수록 사람은 껍데기에 치중합니다.
우리도 오늘 똑같은 함정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내용으로서의 예배는 뒷전이고, 즉 그릇에 무엇이 담겼는지는 관심이 없고
큰 그릇, 화려한 그릇, 내 마음에 드는 그릇 타령한다고 정신이 없습니다.
더 화려한 조명과 음향과 좌석을 갖춘 예배당들이 즐비합니다.
1시간 남짓의 예배를 위해 방송국 저리 가라 하는 시스템들이 교회에 도입됩니다.
찬양집회라고 말은 하는데 찬양인지, 개인 넋두리인지 알지 못할 가사,
말씀 해석은 오간 데 없고 자극적인 레퍼토리로 범벅이 된 스피치를 설교라고 하는 강사,
그런 설교를 전국을 돌아다니며 똑같이 찍어내는데 팀과 함께 움직인다고
수백,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초청료까지 이러면 아이돌 콘서트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런 ‘예배’는 지역교회들은 엄두도 낼 수 없습니다. 과연 이것이 예배입니까?
단을 높이 쌓고 돌을 반듯하게 다듬고 엄청난 계단을 놓아서
제단을 화려하게 만드는 것과 다를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사람들이 그런 제단을 보면서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그런 콘서트 같은 예배를 보면서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계명을 통해 원하시는 것은 (계속 반복되지만)
우리 인간을 태초에 창조하신 모습대로 회복하시고
우리와 친밀하게 교제하는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 교제의 복이 바로 예배입니다.
우상을 섬기지 맙시다. 하나님을 섬깁시다. 예배를 예배하지 맙시다. 하나님을 예배합시다.
나를 위하여, 나를 기쁘게가 본질인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저와 여러분의 삶, 예배자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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