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확장변수1 | 20220620 |
|---|---|
| 확장변수1 | 박현덕 |
| 확장변수1 | 고후 10:1-6 |
| 확장변수1 | https://www.youtube.com/watch?v=NOPVyB4FeW4 |
39. 사탄에게 속아서는 안 됩니다
(고후 10:1-6 찬송 348장. 2022.6.20(월)
바울은 오늘날 고린도전서로 알려진 서신을 통해 고린도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던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문제들을 제기하면서 복음의 진리 위에 굳게 서고,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교회다움과 성도다움을 회복하라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이 서신을 전하려고 방문했던 바울의 동역자인 디모데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그가 가지고 갔던 고린도전서 내용은 교회에 더 큰 논쟁과 다툼을 야기했습니다. 바울의 메시지에 동조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거짓교사에게 현혹되었거나 바울의 사도직을 의심했던 사람들은 편지를 읽고 더 바울을 거세게 비난하며 등을 돌렸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마지막 부분에 언급했던 구제헌금에 관한 내용도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평소 자비량으로 선교했다던 바울이 구제헌금을 빌미로 돈을 취하려 한다는 오해를 사기까지 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이것은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디모데 편에 보낼 때 기대한 반응은 아니었습니다. 에베소에 머물러 있던 그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원래 마게도냐를 거쳐서 고린도교회에 가려던 계획을 바꿔서 곧장 고린도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갔을 때 한 교인이 그를 극렬히 비난했습니다. 그런데도 교인들이 제대로 바울을 변호하거나 보호해 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결국 그는 다시 에베소로 돌아와야 했고, 고린도교회를 생각하며 ‘눈물의 서신’으로 알려진 또 한 통의 편지를 씁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동역자 디도 편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는 이 편지를 보내면서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바울은 디도의 탁월한 중재와 그의 서신 덕분에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회개했으며 바울과 화해를 청하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듣습니다. 그는 너무나 기쁜 마음에 고린도교회 성도들과 화해할 마음이 있다는 내용을 포함하여 주로 용서와 위로와 격려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내친김에 교회 내 분쟁으로 지연되고 있었던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구제헌금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달라고 당부하면서 이 일을 위해 디도를 포함한 세 명의 대표단을 보낸다는 내용의 편지를 써서 또 다시 디도편으로 보냈습니다. 이 서신이 바로 고린도후서였습니다.
이런 대략적인 내용은 이미 고린도후서를 처음 시작했을 때 설명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다시 한번 고린도후서가 전해지게 된 배경과 내용을 대략적으로 살펴 본 것은 지금부터 나누게 될 고린도후서 10장 이하의 메시지가 이제까지 나눴던 1-9장의 메시지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1-9장까지는 이미 전한 대로 용서와 위로와 격려와 화해의 메시지가 주를 이뤘습니다. 그런데 10장에 들어서면 바울의 메시지가 아주 강해집니다. 그는 마치 적군을 목전에 둔 군인처럼 너희들이 나를 공격한다면 언제든지 맞서 싸우겠다는 강한 의지를 전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 때문에 과연 고린도후서 1-9장과 10장-13장의 메시지가 바울이 연속해서 기록한 게 맞는지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중에는 10장에서 13장의 내용은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방문했다가 큰 봉변을 당한 후에 에베소로 돌아와서 썼던 ‘눈물의 서신’ 중 일부분일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만약 이렇게 본다면 고린도후서 기록순서는 10-13장이 먼저이고, 1-9장이 다음이 되는 겁니다. 즉 ‘눈물의 서신’의 일부분일 수 있는 10-13장이 디도 편으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전달되었고, 이 내용을 접한 성도들이 회개하고 바울과 화해하기를 기대한다는 기쁜 소식을 접한 다음, 위로와 용서와 격려의 메시지를 담은 고린도후서 1-9장까지를 기록했다는 겁니다.
다음으로는 고린도후서가 순서대로 기록된 것은 맞지만, 1-9장까지 기록할 때만 해도 고린도교회 상황이 많이 좋아졌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교회에 고질적인 문제가 또 발생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또다시 이전처럼 바울의 사도직을 의심하고 비난하는 거짓교사들이 교회에 들어왔고, 그들에게 동조하는 세력들이 생겼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정말 이번 기회에 고린도교회의 고질적인 악습을 뿌리 뽑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다시 펜을 들었는데, 그게 고린도후서 10-13장의 내용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10-13장 내용을 보면 고린도전후서를 통틀어 가장 표현이 강경합니다.
세 번째 주장은 시간적인 간격 없이 고린도후서 1-9장과 10장 이하의 메시지를 연속해서 바울이 기록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바울이 1-9장까지 전했던 메시지는 분명히 고린도교회의 상황이 많이 회복되었기 때문에 전했던 것이고, 그렇지만 여전히 신앙을 왜곡하고 바울의 사도직을 흔들려는 극소수의 대적자들이 교회에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기회를 계기로 다시는 악한 짓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그 어느 때보다 격양된 어조로 메시지를 전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 번째 관점을 존중해도 큰 무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바울은 1-9장까지 단지 위로나 화합의 메시지만 전한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3장에서도 그는 자신의 사도직을 부정하는 세력에 대항하여 사도직분을 강조했었습니다.
어느 입장이 사실이든,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바울은 10-13장 메시지를 통해서 강력한 영적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싸워야 할 적은 교회의 진리를 오염시키고 바울의 사도직을 흔들고자 하는 불손한 세력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교회를 오염시키는 것과 바울의 사도직을 흔드는 게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의 사도직이 흔들리는 것은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전했던 복음의 진리와 가르침을 잘 따르지 못하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대적자들의 전략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주 적절한 비유는 아닐 수도 있지만 옛날 전투에서 어느 쪽이든 대장의 목을 베는 쪽이 승리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전투 중에 대장이 죽었다면 곧 전쟁의 패배를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큰 부상을 입은 이순신 장군도 “싸움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바울이 자신의 사도직에 대해 변호하는 말씀을 접할 때, 그가 정말 사도 직분을 사랑했고 중요하게 여겼다고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자신의 사도직을 강조하며 변호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대적자들과 싸워 승리해서 교회다움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기록하기 전에 갈등과 분열을 겪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고린도교회에 전한 다음에는 더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이 생겼습니다. 만약 고린도후서 1-9장과 10-13장 사이에 시간적인 간격이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영적으로 회복되었던 고린도교회에 또다시 거짓교사들이 침투해서 교회에 큰 위기가 닥쳤다는 것이 됩니다. 또 한편으로 만약 고린도후서를 바울이 시간 간격 없이 연속해서 쓴 서신이라고 가정할 경우에도 비록 교회는 많이 회복 되었지만, 여전히 극소수의 대적자들이 교회에 문제를 일으키려고 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고린도교회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던 간에, 공통적으로 전해주고 있는 경고의 메시지는 “절대로 사탄의 세력을 방심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든 기회를 잡아서 성도들을 미혹하여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사탄의 세력이 있다는 것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이야 말로 선교하면서 이 문제를 아주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린도후서만 아니라, 다른 서신에서도 사탄의 세력을 성도들에게 전하며 우리가 영적싸움을 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전했던 겁니다. 예를 들어 에베소서에서 그는 이런 말씀을 전했습니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엡 6:11-13).”
고린도후서 2장에서도 바울이 마음을 아프게 한 자를 이제는 용서하라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사탄에게 속지 않기 위해서라고도 했습니다(고후 2:11).“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사탄의 전략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죄를 회개한 자를 용서하고 기꺼이 품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바울은 이런 말씀을 전합니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후 10:4).“ 바울은 자신을 대적하면서 교회를 왜곡되게 변질시키고 다시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려는 악한 세력들에 대적하기 위해서 얼마든지 맞설 준비가 되어 있으며, 이 영적전투에서 자신이 어떤 무기를 가지고 싸울 것인지 밝혔습니다. 그 무기가 뭡니까?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에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10장 이하의 말씀을 본격적으로 나누기 전에 한 가지만은 명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절대로 사탄에게 속지 마십시오. 교회는 언제든지 악한 세력에게 흔들릴 수 있습니다다. 특히 전통이 오래된 교회일수록 그 교회가 가지고 있는 악습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목회자의 영적권위를 존중하지 않는 악습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처럼 계파 갈등을 겪었던 교회는 조금만 사랑이 식으면 또 편을 가르고 다툴 수 있습니다. 헌금 문제가 투명하지 못해서 문제가 생겼던 교회는 제도를 개선하고 노력해서 신뢰를 회복했다 해도 조금만 문제가 발생하면 ”그러면 그렇지“라는 분위기가 퍼지면서 또다시 교회에 대한 신뢰도가 급격히 무너져 내릴 수 있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회개하고 교회를 개혁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지만, 여전히 고린도교회의 뿌리 깊은 악습은 어떤 식으로든지 상존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 분위기가 좋아지고 성도들과의 관계가 많이 회복되었다 해도 방심하지 않고 악한 세력과는 단호히 맞서고자 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항상 영적으로 깨어있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탄에게 속지 말고 절대로 악한 세력이 우리교회를 침투하여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진리에 바로 서고 서로 사랑으로 하나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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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19 |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십시오(딤후 4:1-5) | 조광윤 | 2022-06-18 | 36 | |
| 2218 | 말씀의 능력으로 경건한 삶을 사십시오(딤후 3:13-17) | 조광윤 | 2022-06-17 | 66 | |
| 2217 | 무지와 악한 마음이 메시야를 죽였습니다(눅 22:66-71) | 오덕호 | 2022-06-15 | 51 | |
| 2216 | 예수님의 고난은 대속의 길이며 바른 삶의 모본입니다(눅 22:63-65) | 오덕호 | 2022-06-14 | 48 | |
| 2215 | 하나님은 헌금을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십니다(고후 9:6-15) | 박현덕 | 2022-06-14 | 47 | |
| 2214 | 선한 영향을 끼치는 좋은 교회가 됩시다(고후 9:1-5) | 박현덕 | 2022-06-13 | 43 | |
| 2213 | 경건한 삶을 사십시오(딤후 3:10-12) | 조광윤 | 2022-06-11 | 63 | |
| 2212 | 복음을 거부하게 만드는 어리석음과 어리석은 세력의 미래(디모데후서 3:6-9) | 조광윤 | 2022-06-10 | 32 | |
| 2211 | 예수님을 부인하면서도 예수님을 따르는 베드로(눅 22:54-62) | 오덕호 | 2022-06-08 | 63 | |
| 2210 | 대제사장도 사탄의 종이 될 수 있습니다(눅 22:47-53) | 오덕호 | 2022-06-07 | 54 | |
| 2209 | 투명한 헌금관리와 선용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성도에게도 기쁨이 됩니다(고후 8:16-24) | 박현덕 | 2022-06-07 | 30 | |
| 2208 | 예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바라보며 구제에 힘쓰십시오(고후 8:7-15) | 박현덕 | 2022-06-06 | 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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