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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5일] 내 믿음에 끊임없이 질문하시는 하나님 (창 22:1-24)
 
[5월 5일] 내 믿음에 끊임없이 질문하시는 하나님 (창 22:1-24)
2026-05-05 02:18:19
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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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절까지의 내용을 중심으로 오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서론. 21장에서 그 일들(22:1a)

아브라함의 인생에서 창세기 21장은 특별한 장입니다.

오랫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던 약속의 아들 이삭이 드디어 태어납니다. 

사라는 웃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할례를 베풀었습니다. 

집안에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마침내 눈에 보이는 현실이 된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21장은 기쁨만으로 채워진 장이 아닙니다. 

기쁨의 한편에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아들 이스마엘이 어머니 하갈과 함께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도 아들이었습니다. 

21:11은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그 아들로 말미암아 심히 근심하였더니 

그는 한 아들을 가슴에 안으면서 또 다른 아들을 가슴으로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21장 말미에서 아브라함은 아비멜렉과 평화 조약을 맺습니다. 

우물 분쟁을 해결하고, 땅의 소유권을 확보하고, 이방 왕과의 관계도 정리됩니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리고 21:34은 기록합니다. 아브라함이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여러 날 지냈더라

 

그러니까 21장에서 아브라함은 세 가지를 경험했습니다.

첫째, 이삭 출산이라는 약속이 이루어졌습니다. 드디어 받았습니다.

둘째, 이스마엘을 잃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아들도 지키셨습니다.

셋째, 아비멜렉과 언약을 통해 세상과의 관계가 정리되고 안정이 찾아왔습니다.

이삭도 있습니다. 평화도 있습니다. 안정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정리된 것처럼 보입니다.

바로 그때, 22장 1절이 시작됩니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이 모든 일(이삭 출산, 이스마엘 추방, 아비멜렉 언약)

이 모든 일들이 있고 난 바로 그다음에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모든 것이 해결된 것처럼 보였던 그 순간

하나님은 새로운 방식으로 아브라함 앞에 오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 시점에 아브라함을 부르셨으며

그리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정말 원하셨던 것은 무엇이었는지를 

본문을 통해 발견하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기를 소망합니다.

 

1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을 보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본문으로 넘어가기 전에

우리는 먼저 아브라함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본문 가운데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이 가진 본성을 발견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브라함은 놀랍도록 수동적인 사람이었습니다.

 

12장, 애굽에서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 싸우거나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습니다.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자 그냥 따라갔습니다.

 

16장, 하갈 문제에서 사라가 결정을 내립니다. 

아브라함은 말합니다. 당신의 눈에 좋은 대로 하라

20장, 똑같은 실수를 또 반복합니다. 

사라를 또 누이라고 속입니다. 배우지 않았습니다.

21장, 이스마엘을 내보낼 때 심히 근심하였더니

그는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시자 다음날 아침 바로 내보냅니다.

이 흐름을 보면 아브라함은 일관된 본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피해를 입어도 저항하지 않습니다. 

아파도 오래 붙들지 않습니다. 

상황이 흘러가는 대로 따라갑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냥 실행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빠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자 하는 질문이 없습니다.

하나님, 왜 이렇게 하십니까? 저를 향한 당신의 뜻이 무엇입니까? 아버지, 당신의 마음이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이 아브라함에게는 없습니다. 

사람이 이정도로 자신의 삶이 망가지면 지렁이도 밟히면 꿈틀대듯
뭐라고 저항할법한데, 그는 신기할정도록 명령이 오면 실행합니다. 

상황이 오면 따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자 하는, 

아버지와 깊이 대화하고자 하는 갈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본성이었습니다.

순종은 있었지만, 교제는 깊지 않았습니다. 

따름은 있었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향한 갈망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사람을 정확히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향한 1대1 맞춤 훈련을 설계하셨습니다.

 

2 그를 위한 1대1 맞춤 훈련으로 선택하신 방법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오늘 본문의 중심은 

22장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무너뜨리는데 목적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아브라함의 회복이 하나님의 본래 의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요구하십니다.

네 아들, 네 독자, 네가 사랑하는 이삭을 데리고 가서 번제로 드리라

왜 이삭이어야 했습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가장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단순한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이삭은 수십 년 기다림의 결과였고, 

하나님의 약속의 증거였고, 아브라함의 미래 전부였습니다. 

아브라함이 피해를 입어도, 손해를 봐도, 

무언가를 잃어도 별로 아파하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이삭만큼은 달랐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심장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것을 건드리셨습니다. 이것이 1대1 맞춤입니다. 

아브라함의 본성을 아시고, 아브라함이 반응할 수밖에 없는 

바로 그 지점을 정확히 짚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아브라함은 이 명령 앞에서도 수동적으로 반응합니다. 

3절,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묵묵히 출발합니다

항변이 없습니다. 질문이 없습니다. 

소돔을 위해 하나님께 여섯 번씩 간청했던 그 아브라함이(18장), 자기 아들 앞에서는 침묵합니다.

사흘을 걷습니다. 나무를 아들에게 지웁니다. 칼을 듭니다. 

이삭을 결박합니다. 제단에 올려놓습니다. 손을 내밀어 칼을 잡습니다.

그렇지만 멈추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극단까지 갑니다.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가는 자녀로 회복입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이 시험마저 하나님의 마음을 묻지 않고 수동적으로 끝까지 실행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리십니다.

 

3 끝까지 묻지 않는 그의 이름을 부르시는 하나님

바로 그 순간 하늘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이름을 두 번 부르십니다. 이것은 단순한 제지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직접 말을 거시는 장면입니다. 

내가 여기 있다. 나를 보아라. 나의 마음을 들어라.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아노라.

그리고 숫양이 나타납니다. 아브라함이 그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삭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너의 이삭을 빼앗으려는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친히 준비하는 하나님이다. 

내가 너의 미래를 닫으려는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너의 미래를 열어가는 하나님이다.

 

아브라함이 수동적으로 극단까지 갔을 때, 

하나님이 개입하심으로써 아브라함에게 당신의 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이제 알겠느냐? 내가 어떤 하나님인지.

이것이 여호와 이레의 진짜 의미입니다. 

단순히 하나님이 준비하신다는 사실의 확인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아브라함이 비로소 알게 된 순간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러니까 이 하나님 아버지가 나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를

아브라함이 처음으로 온몸으로 경험한 순간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셨던 회복입니다. 

명령을 따르는 종이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자 하는 자녀로서의 회복입니다. 

상황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의 뜻을 구하는 자녀. 

그 자녀 됨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은 이 모든 과정을 설계하셨습니다.

 

결론.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묻고 계십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질문도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끊임없이 질문하십니다. 

그런데 그 질문의 진짜 내용이 무엇인지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으시는 것은 단지 너 나를 믿느냐?가 아닙니다.

너는 나의 마음을 알고 싶으냐? 

나를 향한 너의 뜻을 구하느냐? 

너는 나와 진정으로 교제하고 있느냐? 

너는 나를 아버지로 알고 있느냐?

우리 중에 아브라함과 닮은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오면 따릅니다. 교회도 나옵니다. 

헌금도 드립니다. 봉사도 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보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자 하는 갈망이 식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왜 이 상황을 허락하셨는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 묻지 않습니다. 

그냥 상황이 흘러가는 대로 따라갑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향해 오늘도 부르십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이름을 두 번 부르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정확히 아신다는 것입니다. 

나의 본성을, 나의 약함을, 나의 수동성을, 나의 무감각함을 다 아시면서도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나의 마음을 알겠느냐?

여호와 이레,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십니다. 

우리의 미래를, 우리의 필요를, 우리의 회복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준비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는 자녀로, 

그분과 교제하는 자녀로 우리가 회복되기를 하나님은 오늘도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질문은 끊임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끊임없기 때문입니다.

 

내 믿음에 끊임없이 질문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 각자를 향해, 1대1로, 우리의 이름을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 부르심의 자리, 모든 삶에서 우리를 향해 질문하시는 하나님께, 

내게 온전한 믿음을 주실 그 하나님께 삶의 모든 질문을 가지고 나아가서

하나님께 답을 얻고 진짜 믿음을 얻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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