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배    >    새벽기도회
[5월 11일] 내 허벅지 밑에 네 손을 넣으라 (창 24:1-16)
 
[5월 11일] 내 허벅지 밑에 네 손을 넣으라 (창 24:1-16)
2026-05-11 00:00:00
손병호
조회수   36

 

 

24장의 주제는 아브라함이 그의 종을 보내어 이삭의 아내를 찾는 이야기입니다.

간단해 보이는 이 주제가 창세기의 중심부에 있고 심지어 가장 긴 장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24장의 의미에 대해서는 오늘과 내일, 모레 사흘에 걸쳐 나누는 24장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절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구절은

우리가 앞에서 본 12장부터 제법 여러 번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가 실제로 복을 받았다. 라고 하는 구절은 이 구절이 처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이 실제로 성취가 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읽으면서

그가 나이 들어 늙어서야 겨우 복을 받는구나. 로 이해하실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까지 함께 해온 아브라함의 고난과 시련, 역경을 생각해 봅시다.)

온갖 산전수전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기필코 그에게 복을 주셨구나. 로 보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언약을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은 거부(巨富)가 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아들도 생겼습니다.

이제 나이가 많아진 그에게 남은 과업은 아들에게 아내를 찾아주는 일입니다.

단순히 그의 부를 대대손손 물려줘야 한다. 같은 세상적인 관점의 과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계속해서 이어져야 한다는 언약의 계속적인 성취입니다.

 

나만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손들 또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받아 누려야 한다는 아브라함의 사명의식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이 복이 물질의 복, 다산의 복 등으로 표현되었으나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십자가 구원을 아는 우리에게는

이 복이 단순히 물질 정도로만 표현될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영원한 생명으로 이해합니다.

나만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고 구원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손들 또한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 온 세상에

선택받은 백성으로서의 사명, 제사장 나라로서의 사명을 감당한다는 그 복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저와 여러분도 그 복을 자손들에게,

혹은 육신의 자녀가 없는 분들은 영적 자녀들과 믿음의 후배들에게 물려주시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절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 허벅지 밑에 네 손을 넣으라

이 맹세의 방법은 독특하게 보입니다.

허벅지 아래라는 말은 남자의 성기를 말하는 완곡한 표현입니다.

(우리말에서 사람이 변을 볼 때 볼일 보러 간다고 둘러 말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볼일이라고 하니 실제로 무엇을 눈으로 보거나 무슨 일이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우리말을 공부하는 외국인들이 이 말을 이해하려면 단어와 그 단어가 쓰이는 상황을 통째로 외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민망하기에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는 특수상황입니다.)

 

사타구니에 손을 넣고 하는 맹세라니!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이 맹세는 만약 맹세가 실행되지 못하면, 즉 종이 맹세를 실행하지 않는다면

아브라함에게서 태어날 자식들이 대대로 그 종의 불성실함을 보복하게 될 것이라는 매우 엄숙한 행위였습니다.

 

게다가 아브라함의 성기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할례를 받았습니다.

이 맹세에는 하나님께서 자동으로 개입됩니다.

아브라함이 지금 종과 하는 이 맹세를 얼마나 귀중하게 여기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3절 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이 중한 맹세를 시키는 목적이 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과 혼인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삶과 동화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에 의해서 아브라함과 가나안 사람들은 이미 구별되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됩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5절에서는 과연 아브라함의 목적이 이삭의 결혼인지 의심하게 만드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5절 종이 이르되 여자가 나를 따라 이 땅으로 오려고 하지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이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6절 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아니하도록 하라

종이 그 땅에서 여자를 찾지 못하면 이삭을 데리고 다시 가도 되겠냐는 지극히 상식적인 질문을 합니다.

남자 얼굴도 보지 않고, 남자의 아버지도 아닌 남자 집안의 종만 보고

결혼을 하겠다고 따라나설 간 큰 처자가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은 상황이 그렇게 되더라도 이삭을 데리고 가지 말라고 합니다.

그의 담대함에는 근거가 있습니다. 7절입니다.

 

7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8절 만일 여자가 너를 따라오려고 하지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

이 모든 일의 시작이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아브라함의 확신입니다.

그는 이 땅을 너의 씨에게, 너의 자손에게 주겠다,

그러나 이방민족과 혼인하고 그들의 삶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동화되어 살고,

그들과 구별되는 것을 포기한다면 모든 언약은 무효가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던 것입니다.

 

15장에서도 하나님은 가나안 사람들을 심판하시고 그들의 땅을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줄 것이라고 이미 약속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가나안 사람들과 피가 섞인다면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쉽지 않고 어려운 길입니다. 편한 길, 좋아보이는 길, 괜찮은 길을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는 대족장입니다. 거부입니다강력한 리더이고 당시의 세상에 알려진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런 자리까지 올라간 아브라함이 계산을 못 하는 사람이겠습니까?

오히려 세상의 기준에서 가장 잘 계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가이드라인을 충실하게 따라갑니다.

아브라함은 이미 (23장의) 모리아 산에서 여호와 이레를 한번 경험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는 내 삶을 열어주시는구나,

내가 계속해서 예배드릴 수 있도록,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도록그분이 주시는 복을 받을 수 있도록 열어주시는구나!

를 완전히 몸으로 체험한 것입니다.

 

믿음은 장식품이 아닙니다. 그의 삶을 이끌고 가는 핵심입니다그는 자기의 선택을 통해 믿음을 고백합니다.

아브라함은 (1) 세상과 섞이지 않았습니다. (2) 세상의 방법을 선택하지도 않습니다(3) 하나님의 인도를 끝까지 신뢰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모범을 따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다 받아 누리고

하나님의 구원을 세상에 보이시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제목 설교자 등록일 조회수 첨부 파일
2975 [5월 21일] 벼랑끝에서 만난 하나님 (대하 33:1-13) 최종운 2026-05-20 12
2974 [5월 20일]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창 26:1-11) 손병호 2026-05-20 11
2973 [5월 19일]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창 25:19-34) 손병호 2026-05-19 12
2972 [5월 18일]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 (창 25:1-18) 손병호 2026-05-18 18
2971 [5월 16일] 존귀한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대하 32:24-33) 최종운 2026-05-15 24
2970 [5월 15일] 조롱의 소리를 기도의 제단으로 가져가라 (대하 32:9-23) 최종운 2026-05-14 23
2969 [5월 14일] 신뢰와 최선의 균형 (대하 32:1-8) 최종운 2026-05-13 32
2968 [5월 13일]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창 24:50-67) 손병호 2026-05-13 27
2967 [5월 12일] 그렇지 아니할지라도 내게 알게 해 주셔서 (창 24:17-49) 손병호 2026-05-12 32
2966 [5월 11일] 내 허벅지 밑에 네 손을 넣으라 (창 24:1-16) 손병호 2026-05-11 36
2965 [5월 9일] 하나님이 주신 것을 하나님의 방식으로 지켜라 (대하 31:11-21) 최종운 2026-05-08 38
2964 [5월 8일] 은혜는 모자람이 없이 풍족히 남게합니다. (대하 31:1-10) 최종운 2026-05-07 37
2963 [5월 7일] 예배의 감격으로 살아가라 (대하 30:13-27) 최종운 2026-05-06 39
2962 [5월 6일] 슬픔 속에서 일어남은 약속을 붙드는 믿음이다 (창 23:1-20) 전소리 2026-05-06 42
2961 [5월 5일] 내 믿음에 끊임없이 질문하시는 하나님 (창 22:1-24) 전소리 2026-05-05 44
1 2 3 4 5 6 7 8 9 10 ... 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