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 시간, 백성들이 가져온 예물이 산더미처럼 쌓인 '축복의 현장'을 보았습니다.
이제 이 산더미처럼 많은 걸 어떻게 관리하고 어떻게 사용해야 되나?
이 예물들이 낭비되거나 사유화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공정하게 흘러가게 하는 행정이 뒤따라야 합니다.
이렇게 막대한 물자가 들어오면 관리 소홀이나 부정부패가 일어나기 쉽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히스기야가 성전 안에 창고를 정비하고,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들을 세워 그 예물들을 관리하게 하는 장면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여러분이 하나님앞에 드려진 헌금, 이 예물은
삶에서 피땀, 눈물의 결실아닙니까?
그것을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려진 정말 가장 귀한 헌신의 고백이다.
교회는 성도들의 헌금을
낭비하지 않고, 허투루 사용하지 않고 투명하고, 지혜롭게 잘 관리하고
잘 사용해야 될 책임이 있다.
11절 그 때에 히스기야가 명령하여 여호와의 전 안에 방들을 준비하라 하므로 그렇게 준비하고
12절 성심으로 그 예물과 십일조와 구별한 물건들을 갖다 두고 레위 사람 고나냐가 그 일의 책임자가 되고 그의 아우 시므이는 부책임자가 되며
먼저는 히스기야는 예물을 정리할 방들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그 예물을 관리할 책임자들을 세우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보시면, 12절에 "성심으로" 그 예물들을 가져다 두었습니다.
이 성심은? 마치 기둥이 지붕을 단단히 버티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어떤 사사로운 유혹이 와도, 흔들리 않고, 견고하게, 한결같은 마음으로 유지하는 자.
여기에 나오는 책임자 고나냐와 시므이, 그리고 그 아래 열 명의 조력자들은
모두 '정직하게, 한결같은' 마음으로 인정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예물을 관리할 때
적당히 눈속임하거나 중간에 가로채지 않고,
하나님 앞에 끝까지 정직하게 행정 처리를 했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교회예산을 타쓰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것을 우리가 받아서 쓰는 것입니다.
우리안에도 성심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사로운 유혹이 와도, 흔들리 않고, 견고하게, 한결같은 마음으로 쓰여지길 축복합니다.
그리고 보시면 13절에는 고나냐와 그의 아우 시므이의 수하에서 보살피는 자 10명의
이름까지 일일이 나열했다.
하나님의 일이 소수의 지도자(히스기야, 고넬냐, 시므이)뿐만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보이지 않게 실무를 맡은 이들의 충성을 통해
완성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교회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아시죠?
교회헌금이 모여지면
재정부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집사님들이 실무를 맡는다.
이것이 교회재정으로 들어오면
집행은 담임목사 혼자서 집행합니까? 담임목사 혼자 결정합니까?
아니요, 투명한 회계처리, 공정한 배분을
담당하는 부서장과 위원장들이 함께 고민하고 처리를 합니다.
이게 뭐냐?
소수의 지도자만 전횡하는 형태가 아니라
각자의 위치에서 거룩한 공동체를 세워가는 '레위인'과 같은 사명을
감당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이 정말 주목하시는 사람은 아무도 보지 않는 창고 안에서 조차
이렇게 예물을 정확히 나누고, 투명하게 처리하는 흔들리지 않는 '성심의 사람'입니다.
오늘도 교회에서 뿐 아니라,
여러분의 직장에서, 가정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봉사의 자리에서
무엇보다 "저 사람은 믿음직해, 저 사람은 흔들림이 없어, 저 사람은 참 성실해"는
인정을 받으십시오.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성실함이 하나님께는 가장 향기로운 예배가 됩니다.
보시면 히스기야의 개혁은 치밀했습니다.
성전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자들뿐만 아니라,
18절-19절 보시면
18절 또 그 족보에 기록된 온 회중의 어린 아이들 아내들 자녀들에게 나눠 주었으니 이 회중은 성결하고 충실히 그 직분을 다하는 자며
19절(a) 각 성읍에서 등록된 사람이 있어 성읍 가까운 들에 사는 아론 자손 제사장들에게도 나눠 주되
누구에게까지 이것을 흘려보내주었냐면
제사장, 레위인들의 가족들요.
어린 자녀들, 아내들까지, 심지어 예루살렘 중심부가 아닌
저~~~ 지방 성읍 주변에 흩어져 살던 가족들에게도 이 은혜가 흘러갔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그 누구에게나
"그 직분을 성실히 수행하는 자"라면 소외되지 않게 했습니다.
이 구절이 물론 제사장들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들을 책임지는 구절이지만...
저는 이게 이렇게 해석이 되더라.
교회의 헌금이 이렇게 흘러가야 된다라는 거에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중심에서 변두리로 골고루 흘러가야 됩니다.
교회의 건강성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지 아십니까?
우리 교회에 주신 축복과 은혜가
고여있는가? 흘러가고 있는가? 이걸 확인해보면 됩니다.
우리 교회에 주신 축복이
담장안에만 있는가? 담장 밖으로 뻗어져가고 있는가? 이걸 확인해보면 됩니다.
왜? 진정한 은혜는 고여있지 않거든요, 담장넘어로 흘러가게 되어있거든요.
우리 교회만을 위해 사용해도 사실 헌금 모잘라요.
그렇다고 우리 교회만을 위해 헌금을 사용하면 그때부터 교회는 건강성을 잃는거에요.
교회의 존재이유가
세상을 복을 흘려보내고,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선교적 목적때문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경제도 어렵고, 우리도 힘들지만
그럼에도 세상속에 하나님나라를 세우기 위해 흘려보내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또 우리가 할 일도 있다.
가까이서는 공동체 안에 나눔의 사각지대를 없애야 합니다.
은혜는 중심에서 변두리로 흘러갑니다.
한 사람도 소외된 자 없도록 따뜻하게 살피고 배려하는 세심한 배려야말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는 길입니다.
중심부의 화려함보다 주변부의 배고픔을 먼저 살필 때,
그 공동체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강력한 공동체가 될줄 믿습니다.
말씀의 마무리합니다.
20절 히스기야가 온 유다에 이같이 행하되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와 진실함으로 행하였으니
21절 그가 행하는 모든 일 곧 하나님의 전에 수종드는 일에나 율법에나 계명에나 그의 하나님을 찾고 한 마음으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
하나님 보시기에 선과 정의와 진실함을 행했답니다.
그의 하나님을 찾고 한 마음으로 행했답니다.
히스기야는 백성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 개혁한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합당한 길을 걸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오른손이 한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
사람의 박수 소리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진실하게 한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의 눈동자를 의식하며 사십시오.
이것이 바로 '코람데오(하나님 앞에서)'의 정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고 진실하게 행하면,
나머지 모든 인생의 결과는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선과 정의와 진실함'으로 여러분의 자리를 지키십시오.
마음을 다해 주님을 찾고, 마음을 다해 여러분에게 맡겨진 작은 일들을 감당하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전심을 다하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인생 전체를 형통하게 하실 것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