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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2일] 그렇지 아니할지라도 내게 알게 해 주셔서 (창 24:17-49)
 
[5월 12일] 그렇지 아니할지라도 내게 알게 해 주셔서 (창 24:17-49)
2026-05-12 00:00:00
손병호
조회수   33

방송 음향 문제로 24:13'부터 음향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같은 내용이 반복되기에 17절부터 28절을 읽는 것은 생략하겠습니다. 대신 설교에서 내용을 설명합니다.)

 

우리는 어제 말씀에서 그의 종에게 아들의 아내를 찾으라는 임무를 주는 아브라함을 만났습니다.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는지아브라함의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고 맹세하게 했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다짐합니다.

이 임무는 단순히 청춘남녀를 연결하는 중매사업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지속과 확장을 위한 일입니다.

 

33절 그 앞에 음식을 베푸니 그 사람이 이르되 내가 내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 먹지 아니하겠나이다 라반이 이르되 말하소서

오늘 말씀은 그 임무를 받은 종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에 대한 간증입니다.

42절 내가 오늘 우물에 이르러 말하기를 내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만일 내가 행하는 길에 형통함을 주실진대

이 임무의 무게를 알았기에 종은 기도했습니다. 모든 것의 시작은 기도로부터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 사명의 무게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명의 무게를 안다면, 얼마나 그것이 귀한 것인지를 안다면,

얼마나 하나님께서 기대하고 기뻐하시는지를 안다면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 무게를 아는 종은 기도합니다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그리고 가장 강력한 일이 바로 기도였기 때문입니다.

 

45절 내가 마음속으로 말하기를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동이를 어때에 메고 나와서 우물로 내려와 긷기로 내가 그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내게 마시게 하라 한즉

종의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가 시작하기도 전에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모든 복을 준비하셨다는데 왜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까?

단순히 지금은 없는 복인데 그 복을 새롭게 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복을 주실 것은 확실한데 그 복을 받아 누릴 준비가 내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 우리 대부분은 이미 주신 복인데 그 복을 깨닫지도 못하고,

- 이미 주신 복인데 받아 누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엉뚱한 것을 더 달라고 울부짖고 있습니다. 보기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하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는 채로 받는 복은 오히려 나를 죽이는 재앙이 될 수도 있습니다.

 

좋은 학교에 입학시켜 달라고, 좋은 회사에 취직시켜 달라고, 결혼을 성사해 달라고,

물질의 복을 달라고, 건강을 달라고 갖가지 기도를 하지만

학교와 회사 때문에 신앙을 버리고, 결혼 잘못해서 영원히 교회를 떠나버리고,

물질 때문에 하나님을 등지고, 건강한 몸 가지고 죄지을 것 같으면

그 기도를 대체 왜 한 것입니까?

애꿎은 하나님께 탓할 것 없습니다. 자승자박(自繩自縛)입니다.

 

이런 어리석음이 오늘날에도 줄을 잇지만, 아브라함의 종의 기도는 좀 다릅니다.

 

43절 내가 이 우물 곁에 서 있다가 젊은 여자가 물을 길으러 오거든 내가 그에게 청하기를 너는 물동이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게 하라 하여 44절 그의 대답이 당신은 마시라 내가 또 당신의 낙타를 위하여도 길으리라 하면 그 여자는 여호와께서 내 주인의 아들을 위하여 정하여 주신 자가 되리이다 하며

종의 기도는 마치 본인이 각본을 다 짜놓고 하나님이 여기에 맞춰주시기를 바라는 억지처럼 보입니다.

우리의 기도와 다를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종의 기도는 자기 요구사항의 나열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기다리는 차분함입니다.

 

낙타는 오랜 시간 동안 물을 마시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사막과 광야에 특화된 동물입니다.

그래서 한번 물을 마실 때 무섭도록 많은 양을 마십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데리고 온) 10마리의 낙타를 모두 먹이려면 상당한 수고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장면에서 리브가가 수고하겠구나. 만 보여서는 안됩니다.

차분하게 끝까지 기다리는 종의 기다림도 보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종은 그가 하나님께 제시한 조건이 다 이루어졌다고 덥석 리브가에게 모든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차분하고 집요하게 리브가의 신분을 확인합니다.

애초에 그의 주인 아브라함이 자기 친척집에서 이삭의 아내를 데리고 오라고 했는데

종은 리브가가 뉘 집 자식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리더가 원하는 요구조건을 자기 멋대로 바꿔서 엉뚱한 결과물을 만드는 아랫사람 때문에

황당한 일이 많이 벌어지는 요즘입니다. 점점 더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능력없음입니다.

내 멋대로 하는 것은 별다른 능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내 하고픈 이야기를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타인의 요구를 맞추는 것은 능력입니다윗사람이 시키는 대로만 잘 해내는 것도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그대로 하는 것도 능력입니다. 그래서 순종은 능력입니다.)

 

21절 그 사람이 그를 묵묵히 주목하며 여호와께서 과연 평탄한 길을 주신 여부를 알고자 하더니

종은 이 일이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에 따라 진행되고 있으며

자신의 기도에 대한 확실한 응답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낙타에게 물을 주느라 분주한 리브가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47절 내가 그에게 묻기를 네가 뉘 딸이냐 한 즉 이르되 밀가가 나홀에게서 낳은 브두엘의 딸이라 하기로 내가 코걸이를 그 코에 꿰고 손목고리를 그 손에 끼우고

그제야 종은 리브가에게 금으로 만든 코걸이와 손목고리 두 개를 주었습니다.

코걸이의 무게가 반 세겔이니 5그램 반, 손목고리의 무게가 10세겔이니 110그램,

모두 합해 200그램이 넘는 금을 리브가에게 선사한 것이니 매우 큰 액수입니다.

처녀에게 이 정도의 선물을 주는 것은 청혼 때 말고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드디어 리브가의 신분이 드러납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친척이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종이 먼저 선물을 준 다음에 이런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종은 자기가 믿고 기도한대로 실천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48 내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사 나의 주인의 동생의 딸을 그의 아들을 위하여 택하게 하셨으므로 내가 머리를 숙여 그에게 경배하고 찬송하였나이다 49 이제 당신들이 인자함과 진실함으로 내 주인을 대접하려거든 내게 알게 해 주시고 그렇지 아니할지라도 내게 알게 해 주셔서 내가 우로든지 좌로든지 행하게 하소서

아무리 잘나고 주인의 신임을 얻어도

(아브라함이 종에게 낙타를 10필이나 맡겼다는 것은 엄청난 재산을 맡긴 것입니다.

종이 얼마나 아브라함의 신임을 얻었는지를 알 수 있는 지점입니다.)

그래봤자 그는 한낱 종일 뿐입니다.

나중에 나오는 야곱의 이야기를 미루어 봤을 때 라반도 부자이고 상당한 사람이었으리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종은 자기가 을이고 라반이 갑인 상황입니다. 내가 아쉬운 부탁을 해야 합니다.

이 집 딸을 얼굴도 모르는 작은 주인의 결혼 상대로 달라고 요청하는,

사실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요청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49) 이렇게 약점이 많은데도 종은 놀라울 정도의 담대함을 보입니다.

주인의 요구가 이루어지면 감사하고,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투입니다.

자포자기가 아니라 담대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주관하신다는 확신입니다.

 

'그렇지 아니할지라도!'어디에서 들어본 듯한 구절이지 않습니까?

바로 다니엘의 세 친구가 느부갓네살 앞에서 고백했던 그 담대함입니다.

하나님 의지하는 사람들은 세월이 지나도 동일하게 담대합니다. 동일하게 세상을 이깁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여호와 이레의 은혜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그 확신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 은혜를 뒷배 삼아서 세상을 담대하게 헤쳐 나가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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