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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일]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창 26:1-11)
 
[5월 20일]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창 26:1-11)
2026-05-20 00:00:00
손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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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아브라함이 살아있었을 때 가나안 땅에 큰 흉년이 든 적이 있었습니다.

이제 이삭의 시대가 되었는데 그 땅에 또 큰 흉년이 들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흉년을 피해 애굽에 내려 갔습니다.(12:10)

이삭도 흉년을 피해 처음에는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했습니다.(26:2)

은연 중에 아브라함이 했던 선택과 똑같은 선택을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습니다. 자기 보기에 좋은 곳으로 기울게 되어 있습니다.

 

2절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문제 해결에 골몰했을 이삭에게 하나님은 가나안을 벗어나지 않을 것을 명령하십니다.

 

우리도 문제 해결 자체를 기도 응답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이미 창세기에서도 여러 번 나온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드러내시고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방식으로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3절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것과 동일한 말씀을 이삭에게도 하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문제는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이삭입니다.

그가 과연 얼만큼이나 이 말씀을 진지하게 내 말씀으로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입니다.

 

사람이 하는 행동의 가장 중요한 근거는 믿음입니다.

내가 그 말을, 혹은 그 사실을 믿기 때문에 행동하는 것이지요.

믿지도 않는 사실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믿음은 들음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어떤 말을 들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믿음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의 들었다는 말은 단순히 귀에 들리는 무엇을 듣는다. 정도가 아니고

귀담아서 듣고 곱씹으며 생각한다. 정도로 보셔야 합니다.

 

이삭은 그의 자손이 번성하고 복의 통로가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애굽 행을 취소합니다. 그리고 흉년이 오더라도 그 땅에서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심합니다.

 

(1) 하나님 나라는 은혜로 주어집니다. 이미 주어졌습니다.

(2) 그것을 받는 통로는 믿음입니다.

(3) 믿음의 증거는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아브라함이 경험했던 흉년을 이삭도 경험합니다. 우리라고 다르겠습니까?

- 할아버지 때에 세상 살기 만만치 않다. 소리를 들으며 자랐는데

- 아버지 때에 살기가 팍팍하다. 말씀하시고

-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만성적인 경기 침체입니다.

대체 살만하다는 소리는 언제 듣습니까? 잘되는 이야기는 모두 남 이야기 같습니다. 모두가 흉년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면 사람들은 각자의 피난처를 찾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흉년을 피하는 참된 피난처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피난처는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46: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걸어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피하는 방법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가나안 땅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7절 그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

어수선한 마음을 진정시켰는데 난관이 또 나타납니다.

그곳의 백성이 아내인 리브가에게 관심을 보이자, 이삭은 두려움을 느낍니다.

리브가의 외모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정도로 아리따웠기에

이삭은 사람들이 그녀를 취하고자 자기를 죽일까 하는 염려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겨우 그가 생각해 낸 방법은 리브가를 자신의 누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전에 아브라함도 사라를 자신의 누이라고 속였다가 크게 망신을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린 이삭이 과연 이 이야기를 모르고 있었을까요?

대중매체가 전무하던 시대가족들로부터 입에서 귀로 전해 듣는 이야기가 유일한 오락거리였던 그 시대에

이삭이 자기 부모의 무용담, 혹은 죽다 살아난 이야기를 들었을 가능성은 대단히 높습니다.

어머니 사라가 아버지를 반은 원망하고 반은 놀리는 투로 얼마나 많이 이야기했겠습니까?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들로서 우리 아버지 정말 못났다.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막상 똑같은 상황이 닥치니 자기라고 뾰족한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이들의 실패와 실수를 들을 때 못났다. 어찌 그러나. 싶지만

정작 내가 똑같은 상황에 부딪혀 보면 나도 별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나이가 들어서야 깨닫습니다.

- 우리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들이 좋아서 그런 결정을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 인생이 최선은 오간 데 없고 최악과 차악 중에 겨우 선택해서 파국을 면하는 결정의 연속(플라톤, <국가> 중에서)’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8절 이삭이 거기 오래 거주하였더니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본지라

이삭은 제법 오래 그랄에 거주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삭과 리브가가 서로 껴안고 있는 것을 아비멜렉이 봅니다.

우리말에서 껴안았다는 대단히 점잖게 번역된 단어이고

원어의 뜻은 성인남녀, 부부 사이에서나 가능한 성적(性的) 장난과 희롱, 유희를 말합니다.

친동생과 누나가 이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아는 아비멜렉은 이삭을 강하게 추궁합니다.

그제야 이삭은 주섬주섬 진실을 이야기합니다.

 

9절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로 말미암아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라

이삭은 더 이상 아버지 품의 소년이 아닙니다. 자기의 자식이 자라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난 지 오래고 자기는 상당한 재산과 종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약속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약속도 받았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이삭이 대체 무엇이 아쉬워서 아내를 부인한단 말입니까?

9절의 변명은 거부이며 대 족장이며 한 가정의 가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형편없는 대사입니다. 읽는 사람이 부끄러워질 지경입니다.

 

11절 아비멜렉이 이에 모든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나 그의 아내를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 하였더라

그런데 참 우습지 않습니까? 일이 이 정도로 커진다면 아비멜렉은

네가 감히 왕을 능멸해? 내 앞에서 거짓을 말해? 이놈의 목을 쳐라!’

라고 하는 것이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왕일텐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아비멜렉을 통해서 거꾸로 이삭과 리브가를 지켜 주십니다.

기이합니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보호하심입니다.

 

이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미 있지만 여전히 죄에 익숙하고 연약합니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죄사함 받은 분명한 사실이 있지만

여전히 나의 옛 모습, 못난 자아와 씨름하며 성화의 싸움을 싸워야 하는 것이 우리 앞에 놓인 현실입니다.

 

흉년이 찾아오고, 아비멜렉이 나타나는 등 상황이 만만치 않습니다. 나는 연약합니다.

그래서 실패도 하고 넘어도 집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고 무적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실함으로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고 다시 일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하심과 인도하심을 바라봅시다.

회개로 다시 일어서는 나 자신, 우리 가정, 우리 교회, 나라와 민족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하나님이 이미 베풀어 주신 큰 은혜, 언약의 그 말씀이 여러분의 말씀이 되기를 바라며

이삭과 같은 복과 은혜를 다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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