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 시간 산헤립의 대군이 하룻밤 만에 송장이 되고,
히스기야가 존귀함을 얻는 극적인 반전을 보았습니다.
이제는 평탄한 길만 남은 것 같습니다.
24절 보세요.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
히스기야가 갑자기 병들어 죽게 된거다.
지금 나라가 풍전등화 같은 위기상황인데,
겨우 산헤립을 물리쳤지만 또, 언제 대적들이 찾아올줄 모르는 다급한 상황인데
그럴때일수록 성군, 히스기야 왕 같은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하필 히스기야왕이 병들어 죽게된 것이다.
오늘 본문에는 안나왔지만 왕하 20장에서 보시면 이때 어떻게 합니까?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여 눈물로 기도하지 않습니까?
그때 히스기야의 생명이 15년이 연장이 됩니다.
기도함으로 응답과 이적을 체험하게 된것입니다.
그러나 25절은 또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기록합니다.
25절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사랑하는 성도님들~
여러분, 인생의 진짜 위기는 산헤립이 쳐들어왔을 때가 아닙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할 때
또 수많은 이적과 기적을 체험하고, 나란 존재가 마치 특별한 존재가 된것같은 느낌이 들 때
바로 그때가 가장 위험한 때입니다.
교만은 왜 찾아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나의 실력'으로 착각하는 순간 시작됩니다.
간절할 때는 그렇게 눈물로 매달리다가도,
또 상황이 좋아지면 "내가 열심히 해서 이렇게 된 거지"라는 생각이 슬며시 듭니다.
은혜를 잊어버리는 망각은 영혼을 썩게 하는 암세포와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보답하는 길은 다른게 아니다.
날마다, 하나님 '내가 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이 하셨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교만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려 할 때,
다행인 것은 히스기야가 늦지 않게 반응합니다.
26절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
다행이 하나님의 진노가 그의 생전에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성도의 위대함은 죄를 안 짓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은 죄를 즉시 '회개'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다 연약해서 교만해질 수 있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겸손하게 회개하고, 하나님앞에 '낮아지는 자'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교만의 산을 허물고 더 낮은 눈물의 골짜기로 내려가십시오.
내가 나를 낮추면 하나님이 나를 높이시지만,
내가 나를 높이면 하나님이 나를 낮추십니다.
회개는 하나님과 다시 채널을 맞추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본문 후반부는 히스기야의 엄청난 부귀와 영광, 그리고 그의 마지막을 기록합니다.
그는 기혼의 윗샘물을 막아 성 밑으로 끌어들이는 대공사 - 히스기야 터널도 성공시킵니다.
30절 이 히스기야가 또 기혼의 윗샘물을 막아 그 아래로부터 다윗 성 서쪽으로 곧게 끌어들였으니 히스기야가 그의 모든 일에 형통하였더라
그러나 하나님보실때 무엇이 형통일까요? 히스기야 왕의 형통은 그의 업적이 아니다.
눈에보이는 부귀영화가 아닙니다. 엄청난 대공사를 성공시킨것이 아니다.
진정한 형통은 화려한 성과가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받는 마침표'에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실수도 했고 교만하기도 했지만,
결국 하나님께 돌아와 그의 생애를 아름답게 마무리했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이 그를 존경하며 장사했습니다.
다른 것이 형통이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 이게 형통한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의 인생 마지막 날,
사람들은 여러분을 어떻게 기억할까요?
돈을 많이 번 사람,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했던 사람, 끝까지 겸손하려 애썼던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소망합니다.
한 가지만 더 살펴보시면 오늘 31절은 우리 가슴을 서늘하게 합니다.
31절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의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
바벨론 사신들이 왔을 때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의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여 시험하셨더라'고
말합니다.
기억나시죠?
산헤립 왕이 찾아오셨을 때는 하나님이 직접 싸워주셨지만,
지금 바벨론 사신들이 보물을 보러 왔을 때는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내버려두셨다.
왜? 하나님은 그때에도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선택하는지, 자기를 의지하는지 시험코자하신 것이다.
안타깝게도,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자랑하는 대신 자기 보물을 자랑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 가끔 우리가 승승장구하고 잘나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홀로 내버려두실때가 있다.
시험은 고난 중에만 오는 것이 아니라 풍요 중에도 옵니다.
하나님이 잠시 자리를 비워주실 때,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때,
그때가 바로 여러분이 쌓아온 신앙의 기초가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하나님이 조용히 지켜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코람데오로 사십시오.
그때에도 내가 아니라 하나님임을 고백하십시오.
이 결과도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십시오.
어떤 순간에도 '내 업적, 내 자랑, 내 성과'를 드러내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는 '나의 하나님'을 보여주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히스기야는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끝내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 무릎을 꿇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까지 잘 달려오셨습니다. 지금부터 다시입니다.
혹시 지금 인생의 정점에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높아져 있지는 않습니까?
받은 은혜를 내 공로로 돌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이 시간, 히스기야처럼 다시 낮아집시다.
"주님,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라고 고백합시다.
하나님은 낮아진 여러분의 삶을 끝까지 책임지시고,
히스기야처럼 존귀한 마침표를 찍게 하실 것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