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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7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출 5:1-23)
 
[8월 17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출 5:1-23)
2026-08-17 04:49:16
손병호
조회수   19

 

 

모세와 아론이 드디어 바로 앞에 섭니다.

이 모든 일이 있기 전에 3절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나타나심입니다.

 

3절 그들이 이르되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이스라엘 백성은 압제를 당하고 있고

오히려 찾으면 그들이 먼저 하나님을 찾는 것이 당연할텐데,

 

그들은 하나님을 찾을 생각도 하지 못했고 찾을 능력도 없었습니다.

우리 인간이 처해 있는 총체적 난국의 모형입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하나님께서 먼저 나타나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 만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계획하신 바를 이루시기 위해 나타나시고 그들을 만나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은혜라고 부릅니다.

 

바로는 살아있는 신으로 추앙받는 존재입니다.

감히 쳐다도 볼 수 없는 그를 맞서서 설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그들에게 먼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들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을 향해 교회가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상대가 안 되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담대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우리에게 먼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하신 말씀을 그대로 받아서 선포할 뿐입니다.

그 말씀의 내용이 바로 1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오늘의 교회에게, 우리 인간에게 무엇을 원하시는 지가 드러납니다.

 

1절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하심의 목적은 바로 절기를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하시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우리 인간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태초의 모습을 회복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가리켜 내 백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소유라고 선언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모두 바로의 노예인 줄로 알고 지냈습니다.

바로의 소유물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가리켜 내 백성이라고 하십니다.

이 선언은 바로에게는 큰 도전으로 다가왔겠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큰 위로와 기쁨, 놀람과 감사와 기대로 이어졌을 것입니다.

 

절기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되새기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은 사랑의 시간입니다.

그래서 절기는 사랑입니다. 교제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다시 손을 잡는 시간입니다.

 

절기와 (3) 제사라고 하니까 뭔가 복잡한 의무의 연속인가,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구약의 제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해지기는 했으나, 이 또한 답답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절기도 제사도 예배도 의무가 아닙니다. 사랑이며 권리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자리, 태초의 자리로 우리를 부르시는 은혜입니다.

 

2절 바로가 이르되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세상 권세는 하나님의 프로포즈에 대해 발작합니다.

은혜를 위협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을 내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의 알다는 단순한 지식 뿐만 아니라

친밀한 관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인격적인 경험, 체험적인 지식을 모두 포함합니다.

바로는 지금까지 하나님이 누구신지 들어본 적도 없고 경험해 본 적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는 하나님의 목소리에 순종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경험입니다. 지식이 아니라 관계가 동반되는 인격적인 체험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광야로, 자신과 데이트할 수 있는 자리로, 서로만 바라볼 수 있는 자리로

인간을 부르시지만 바로 같은 세상은, 바로 같은 인간은,

내가 모든 것을 거머쥘 수 있다고 착각하는 인간은

그의 인생에서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들어본 적도 없고 경험해 본적도 없기에

하나님의 프로포즈에 응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7절 너희는 백성에게 다시는 벽돌에 쓸 짚을 전과 같이 주지 말고 그들이 가서 스스로 짚을 줍게 하라 8절 또 그들이 전에 만든 벽돌 수효대로 그들에게 만들게 하고 감하지 말라....

바로는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을 풀어주기는커녕 더 몰아붙입니다.

고되지 않고 힘들지 않고 만만하니까 이놈들이 딴 생각을 하는구나. 생각한 것입니다.

벽돌을 만드는데 쓰는 짚을 지금까지는 나라가 준비해줬는데

바로는 이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직접 준비하라고 새로운 조치를 발표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제안 앞에서 세상 권세는

우리가 순순히 예배의 자리로, 하나님과의 교제의 자리로 나가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사탄은 우리를 인생의 문제와 분주한 일상에 매이도록 몰아갑니다.

그러나 계속 분주한 삶에 끌려 다닌다면,

우리 영혼의 상태는 하나님과의 교제에 무감각해지고 쇠약해져 갈 것입니다.

 

15절 이스라엘 자손의 기록원들이 가서 바로에게 호소하여 이르되 왕은 어찌하여 당신의 종들에게 이같이 하시나이까

이스라엘 백성은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도 전혀 분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자존감도 바닥에 팽개치고

스스로 바로의 종이라고 하고 그 앞에 머리를 숙입니다.

이렇게 바로의 노예로 사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삶이었던 것처럼

세상 권세의 노예로 사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삶을 사는 인생들이 있습니다.

바쁘게 살고 정신없이 살고, 무엇인가 하는 것 같다고 무엇인가 된 것 같다고

착각하며 살지만 정작 영혼은 영원한 죽음으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19절 기록하는 일을 맡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너희가 매일 만드는 벽돌을 조금도 감하지 못하리라 함을 듣고 화가 몸에 미친 줄 알고 20절 그들이 바로를 떠나 나올 때에 모세와 아론이 길에 서 있는 것을 보고 21절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를 바로의 눈과 그의 신하의 눈에 미운 것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살피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이게 무슨 엉뚱한 소리란 말입니까?

지금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것은 모세와 아론이 아니라 바로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15) 기록원들, 노예 중에서도 리더인 그들은

오히려 모세와 아론을 공격합니다.

 

마귀가 괜히 (라틴어) ‘디아볼루스이겠습니까?

그는 나누는 존재입니다. 분열하게 만드는 존재입니다.

분노와 미움과 원망을 하게 만드는 존재입니다.

기록원들은 바로의 전략에 말려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주저앉게 만드는 것은 바로가 좋아할 일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진짜 대적해서 당당하게 일어나야 할 대상에 맞서 싸우기도 전에

우리끼리 무너지도록 분열하게 만드는 것은 마귀가 즐겨 써먹는 전략입니다.

 

이 모든 바로의 행동 뒤에는 역설적으로 그의 두려움이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않는 대상이라면 이렇게까지 이것저것 사전조치를 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두렵기 때문에 더 강한 척하는 것이고 상대를 더 강하게 제압하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의 실체는 결국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입니다.

 

오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할 때 우리 가정을, 교회를 분열하게 하는 악한 영을

예수의 이름으로 대적하시기 바립니다.

또한 우리에게 먼저 나타나셔서 우리를 당신의 소유라고 부르시고 붙드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출애굽기의 위대한 승리의 역사가

오늘 나 자신과 우리 가정과 교회와 나라와 민족의 역사 또한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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