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와 바로의 첫 대면은 모세의 완패로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노예 해방은커녕 노역만 더 가중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서로를 비난하고 있고 모세도 큰 실의에 빠졌습니다.
12절 바로가 어찌 들으리이까 나는 입이 둔한 자니이다...30절 나는 입이 둔한 자이오니 바로가 어찌 나의 말을 들으리이까
모세는 자기가 입이 둔한 자, 입의 할례를 받지 않은 자, 입의 자격이 없는 자,
(지도자로서) 자격 미달이라는 말을 반복해서 합니다.
14절 그들의 조상을 따라 집의 어른은 이러하니라
그런데 지금 이 지점에서 성경은 이야기를 멈추고 갑자기 모세 집안의 족보를 언급합니다.
왜일까요? 앞의 맥락을 생각한다면 이유는 충분합니다.
바로는 (5:2) 여호와가 누구냐는 식으로 상대의 존재 자체를 무시합니다.
모세의 자존심을 꺾어버리고 존재를 무시함으로써
아예 대화 상대로 여기지 않겠다는 의도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렇게 무시당할 사람이 아닙니다.
그의 집안의 시작은 조상 야곱에서부터 시작해서
(16절) 레위와 (18절) 고핫을 이어서 아므람과 (20절) 아론과 모세 형제로 이어집니다.
야곱은 모세의 고조할아버지 격이 됩니다.
모세의 족보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근본이 없는 잡족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일원으로서 하나님의 언약의 당사자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정당한 자입니다.
한 가지 신기한 것은 그의 족보에
(15절) 가나안 여인도 들어가 있고 (20절) 아버지의 누이, 즉 고모와 결혼한 사람도 있는 등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고결함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들도 있다는 점입니다.
족보는 거리낌 없이 그 사람들도 언급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혈통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전혀 문제로 여기지 않으시고
구원의 도구로 선택하십니다.
나중에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율법에 따르면
이방 여인과의 결혼은 물론이고 친족과도 결혼하지 말라,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왜 족보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한단 말입니까?
모세로서도 ‘이 율법은 나도 걸리는데?’ 뜨끔한 부분이 있었을 것입니다.
율법이 선포되면서 모세의 정통성에 시비를 거는 사람이 생길 것이라는 위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과거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미래로 이끄십니다.
사람은 과거를 논하고 물어뜯기 좋아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미래를 보십니다.
우리를 어떻게 새롭게 빚어가실지를 말씀하십니다.
26절 이스라엘 자손을 그들의 군대대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라 하신 여호와의 명령을 받은 자는 이 아론과 모세요
그들은 군대가 아닙니다. 누구와 전쟁은 고사하고 훈련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실제로 그들이 애굽을 떠나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은 정말 좌충우돌의 연속입니다.
하루라도 사고를 치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치는 병이라도 있는 사람들처럼
쉴 새 없이 실수하고 하나님을 불신하고 반역하고 못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400년이 넘도록 애굽의 종살이를 해왔습니다.
민족적으로도 그렇고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너무나 많이 망가져 버린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일제 치하에서 36년 식민지였는데도 아직 잔재 청산이 안 되었다고 난리인데,
400년을 종살이한 이스라엘에게 무슨 민족정신이 남아있고 자존감이 남아있겠습니까?
개인도 가정도 민족도 물처럼 녹아내리는 상태까지 이르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망가진 그들을 불러내셔서 다시 새롭게 하시고
온 세상 가운데 언약 백성으로 당당하게 세우실 것입니다. 그래서 군대입니다. 훈련된 조직입니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일사불란하게 달릴 수 있는 멋진 공동체입니다.
29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바를 너는 애굽 왕 바로에게 다 말하라
모세는 자기의 결함 때문에 사명을 거절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내가 말하겠다, 너는 바로에게 전하라고 하십니다.
모세와 아론이 대단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입니다.
바로를 굴복시키는 것은 모세의 조리 있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것도 불신앙이지만
- 하나님의 약속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의심하는 것도 불신앙입니다.
- 자격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시는 것이지 본인이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 하나님께서 괜찮다 하시는데 내가 계속 안 괜찮다 하는 것도 불신앙입니다.
이러한 원리는 오늘날 하나님으로부터 택하심과 부르심을 입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라고 하십니다.
모든 민족에게 천국복음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이런 엄청난 명령 앞에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사실 모세가 느끼는 감정과 비슷할 것입니다.
세상을 말씀으로 설득할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걸 말해서 과연 내 가족이 들을까? 우리 친구들이, 직장 동료들이, 지역 이웃들이 들을까?
의심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하시는 것처럼 결과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십니다.
우리는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면 그 뿐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을 존귀한 자로 세우시고 부르셨습니다.
족보는 그 위임장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위임장도 써 주시고, 사명도 주셨습니다.
나의 행동만 있으면 되는 차례입니다.
나의 부족함을 보지 말고 하나님의 강하심을 믿읍시다.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사명을 담대하게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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