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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일]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계 3:7-13)
 
[1월 20일]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계 3:7-13)
2026-01-20 00:00:00
손병호
조회수   17

 

 

7절 빌라델비아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늘 우리가 말씀에서 만나는 빌라델비아 도시는 교통의 요지이고 상업의 중심지였습니다.

가죽 공업이 발달했고 양질의 포도주 수출로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a. 우상숭배와 b. 사치와 도덕적 문란이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c. 동시에 지진이 잦아서 사람들이 늘 불안에 떨던 도시입니다역사상 큰 지진이 몇 차례 있었습니다.

 

저는 주석과 자료를 통해 빌라델비아 도시의 배경을 사전에 공부하면서 일본이 많이 생각났습니다.

a. 수백만에 가까운 우상을 섬기고 있고 b. 향략적 물질문명에 찌들어 있고, 도덕적인 문란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

c. 아무리 지진과 해일이 자주 일어난다지만 사람들은 이런 일을 통해 회개하기는커녕

더 마음 문을 걸어 잠그고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일본을 위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빌라델비아교회는 어떠했겠습니까? 오늘날 일본교회가 눈에 보이는 영향력이 없고

극소수의 교인들이 겨우 명맥만 유지하며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일본의 복음화율은 0,73%, 1%도 되지 않습니다. (일본 문화청 2023년 자료)

일본의 인구가 12천만 명이 넘는데 기독교 신자는 100만 명도 안 되는 셈입니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작년 기준 960만 명 정도입니다. (대한민국 통계청 2025년 자료)

 

빌라델비아도 향락에 찌든 도시, 잦은 천재지변 앞에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교회였습니다.

그런 빌라델비아교회 앞에 주님께서는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7절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8절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다윗의 열쇠라는 표현은 구약성경 이사야 22장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원래 나라와 왕궁의 창고지기였던 셉나라는 사람이 부패함을 하나님께서 책망하시면서 그 자리를 엘리아김에게 주겠다고 경고하십니다.

그때 나오는 표현이 바로 다윗의 열쇠입니다.

(22:22) 엘리아김이 열면 닫을 자가 없고, 엘리아김이 닫으면 열 자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한 집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말은 그 사람이 그 집의 청지기주인 바로 아래 최고책임자라는 말입니다.

국고(國庫)와 왕실 창고를 맡을 만큼이면 얼마나 큰 책임을 맡은 것인지 충분히 무게감을 느낄 만합니다. 절대적 책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다윗의 열쇠를 가지셨다는 이 말씀은

왕실 창고 책임자가 열쇠를 가지고 있으면서 모든 권한과 책임을 지는 것처럼

예수님이 구원의 문,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여닫는 절대 주권자이시라는 말씀입니다.

 

구원의 주권은 예수 그리스도께 달려 있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지는 그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전도의 문도 그분께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의 문을 여실 때

세상의 그 어떤 악한 세력도, 인간의 체제와 나라와 시도도 그 문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엄청난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지만

빌라델비아교회는 눈에 보이는 화려한 세상과 비교했을 때 정말 아무 것도 없어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빌라델비아교회를 가리켜 8절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작은 능력을 가졌다고 말씀하십니다.

교회가 힘이 없어 보이고 작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동족인 유대인들에게도 배척당하고 그들을 다스리던 로마에게도 박해받았습니다.

세상이 그들에게 문을 닫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문을 여신다고 약속하십니다.

닫힌 문을 여는 권세가 세상보다 더 크신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소아시아의 일곱교회가 예수님께 칭찬과 책망을 받긴 했는데 특별하게도

서머나교회와 오늘 우리가 만난 빌라델비아교회는 책망 받지 않고 칭찬만 받았습니다.

두 교회 모두 환경은 어려웠지만 말씀에 순종하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은 충성스러운 교회였습니다.

 

빌라델비아교회가 이처럼 귀한 칭찬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8절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그들이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라 신실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열쇠이신 예수님을 붙잡았기 때문에 실패처럼 보이는 순종도 하나님 나라에서는 열린 문이 됩니다.

 

9절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문을 여십니다. 교회가 기필코 승리하게 하십니다. 역사가 그 증인입니다.

빌라델비아교회처럼 세상의 정부, 권세자, 독재자, 군대, 사상, 철학이 강해보이지만

정작 그들이 다 쓸려가고 사라질 때 연약해보이는 교회는 희한하게도 끝까지 살아남고

오히려 더 왕성해집니다. 하나님께서 문을 여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더 큰 약속을 주십니다.

 

11절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주님께서는 빌라델비아교회가 가진 것을 굳게 잡으라고 하십니다.

인내로 말씀을 끝까지 지키면 주님께서는 이들을 하나님 성전의 기둥으로 삼으십니다.

기둥이 없는 건물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세울 때

빌라델비아교회가 보여준 신실함과 충성은 그 나라를 지탱하는 핵심 가치가 될 것입니다.

그 위에 하나님의 이름을 새기고 영원히 새 예루살렘에 거하게 하실 것이라는 엄청난 약속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기준에 익숙해져서 교회도 그 기준으로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교회의 눈에 보이는 크기, 건물, 교인의 숫자 등입니다.

그러나 오늘 빌라델비아교회를 통해서 주님께서는 자신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시는지를 친히 드러내십니다.

 

우리가 작은 능력으로도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충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음을 믿습니다.

우리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상급과 하늘의 기쁨을 우리에게 주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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