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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1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계 3:14-22)
 
[1월 21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계 3:14-22)
2026-01-21 00:00:00
손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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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절 라오디게아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라오디게아는 무역이 발달한 도시였습니다. 거기에 연결해서 금융업이 발달했습니다.

양모(羊毛) 산업이 발달했으며, 눈에 바르는 안약이 유명했습니다.

모든 시민이 부유한 삶을 살았는데 어느 정도였냐면

로마 제국이 지방에 원조하는 것을 거절할 정도로 도시의 자생력이 강했습니다.

오늘날로 따지면 지방 자치정부가 아주 튼튼하고 재정건전성도 좋았다는 말입니다.

 

교회의 상황도 좋았습니다다른 도시들처럼 극심한 박해에 시달린 것도 아니었고 생활에도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문제는 나태와 안일함에 빠져 영적 갈급함이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라오디게아교회에게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14절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아멘은 우리가 워낙 자주 사용하다보니 그 의미가 퇴색된 단어입니다만

단순한 응답, Yes를 넘어 진리에 대한 확증이며 신뢰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14:6에서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내가 진리의 기준 그 자체다! 라고 선언하십니다.

 

충성되고 참된 증인도 살펴보겠습니다.

a. 충성되다 할 때의 원어는 신실한, 배반하지 않는, 왜곡하지 않는 등의 의미입니다.

b. 참되다는 말 또한 겉모습 뿐만이 아닌 본질적으로 참되다는 뜻입니다.

a. 예수님은 하나님을 드러내실 때 왜곡없이 드러내신 분이십니다.

b. 십자가를 지면서까지 자기의 모든 존재를 쏟아내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라는 말은 예수님이 피조물의 시작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근본에 해당하는 원어 [아르케]는 요한복음 1:1을 시작할 때 태초에말씀이 계시니라

할 때와 같은 말입니다. 근원이며, 기원이며, 주권입니다.

골로새서1:16에서도 바울이 만물이 그로 말미암았다고 고백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창조의 근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곧 창조주 하나님과 동일한 권세를 가지신 분이시라는 선언입니다.

 

이 모든 말씀과 비교했을 때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기준이다. 라고 하시는데

라오디게아교회는 (17) 나는 부족한 것이 없다 라고 자기판단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왜곡없이 드러내시며 온 삶을 쏟아내시며 그 뜻을 이루셨지만

라오디게아교회는 삶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미지근한 교회였습니다.

(차든지 뜨겁든지 하는 오늘 본문의 유명한 말씀은 양자택일을 하란 뜻이 아닙니다.

그들의 소극적인 자세를 책망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과 동일한 근원을 가지신 분이시지만

라오디게아교회는 삶의 근원을 부와 안정과 성공에서 찾고 있었습니다.

 

라오디게아교회의 가장 큰 죄는 배교도 아니고 이단도 아니고 박해 속 타협도 아닙니다.

바로 자족(自足)입니다.

 

17절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자족이 왜 죄입니까?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착각이기 때문입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아담의 죄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는 욕망은 하나님 없이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말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창조의 근본으로 자신을 소개하시는 것입니다.

 

창조주이신 예수님은 한낱 눈에 보이는 무엇으로, 그리고 잠시 있다가 사라질 세상의 무엇으로 자신을 치장하고 자랑하는

라오디게아교회를 신랄하게 책망하십니다.

17절에서는 도시의 자랑을 모두 뒤집어서 꼬집으시고

18절에서 구원의 길로 나오기를 권면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17절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18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a. 라오디게아는 부유한 도시이지만

b. 예수님은 교회를 가리켜 너는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다고 영적 실태를 말씀하십니다.

c. (18) 불로 연단한 금을 사라고 하십니다. 변하지 않는 가치, 영원한 가치, 참된 가치인 하나님나라를 위해 사는 것이

진정한 부자, 영적 부자라는 주님의 권면입니다.

 

a. 라오디게아는 안약의 도시이지만

b. 예수님은 교회를 가리켜 너는 영적 맹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c. (18)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하십니다.

영적 맹인들이 난무하는 어두운 시대에 교회가 먼저 영적 안목을 갖추고 눈을 떠서

임박한 재림을 선포하고 세상 가운데 빛을 드러내라는 사명으로의 초대입니다.

 

a. 라오디게아는 양모의 도시이지만

b. 예수님은 교회를 가리켜 너는 영적으로 벌거벗었다. 의의 옷을 입지 않았다 하십니다.

c. (18)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고 하십니다.

어제 빌라델비아교회에서도 나누었던 말씀이지만

흰옷은 구원받은 자들이 입는 옷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자들이 입는 옷입니다승리한 자들이 입는 옷입니다.

지금 라오디게아교회의 교인들은 영적인 벌거숭이들과 다름없습니다어서 의의 옷을 입고 구원받으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19절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주님의 본질은 책망이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라오디게아교회를 사랑한다고 하시지 않습니까? 애가 타는 음성입니다.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20절로 이어집니다.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 말씀은 불신자 전도구절이 아닙니다주님께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 개인과 한국교회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지금 어디에 계신다고 합니까? 문밖에 서 계시다는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라오디게아교회는 자기들끼리 부유하고, 자기들끼리 잘 지내고, 자기들끼리 잘 꾸미고

온갖 것을 다 누리고 있는 (마치 한국교회 같은) 교회이지만

정작 예수님은 교회 안이 아니라 밖에 계시는데 그것도 모르고 흥청망청하는 모양입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나 혼자 나름대로 살아가고, 잘 꾸미고 온갖 것을 다 누리고 있지만

정작 예수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굳이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더 이상 필요로 하지도 않습니다.

내 안에, 교회 안에, 한국교회 안에 예수님이 없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나는 세상에 무슨 영향력을 드러내고 있습니까차가운지 뜨거운지 알 수도 없는 미지근한 상태는 아닙니까?

한국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받는 지탄을 생각해 봅시다예수님이 우리 안에 정말 살아 역사하신다면 어떻게 이렇게까지 될 수 있겠습니까?

 

라오디게아교회를 사랑하시고 또다시 기회를 주기를 원하시는 예수님께서

교회 안으로 들어와서 식사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저와 여러분 안으로 들어오기를 원하십니다.

전반적으로 잘 먹지 못하고 주렸던 고대 사회에서 누구를 초대해서 같이 먹고 같이 마시는 것은 큰 의미를 가졌습니다.

언약이며 친밀함이며 깊은 관계 그 자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원하십니다. 교회 안으로 들어오기를 원하십니다인격적인 교제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문을 두드리십니다문을 부수실 능력이 충분히 있으시지만 부수지 않고 인격적으로 두드리십니다.

문을 여는 순간 진짜 부요함이 시작되고 진짜 풍성함이 시작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다시 주님께 돌아오고 그분을 나의 식탁에 모심으로써

(21) 보좌에 함께 앉는 영광, 진정한 부요함과 하늘의 풍성함을 누리는 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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