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적인 문제로 인해 영상은 제공하지 않습니다. 양해를 바랍니다)
서론: 펼쳐지는 하나님의 심판, 남겨진 하나님의 백성
오늘 6장은 이전과 다르게 분위기가 완전히 바뀝니다.
하늘의 찬양이 멈추고, 땅의 심판이 시작됩니다.
어린 양이 인을 하나씩 떼실 때마다
지상에는 전례 없는 재앙들이 쏟아집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큰 환난(마 24:21),
야곱의 환난의 때(렘 30:7)입니다.
이 심판의 말씀 속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경고가 담겨 있습니다.
1. 첫째 인: 흰 말 - 거짓 평화의 등장 (6:1-2)
1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레 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2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첫 번째 인이 떼어지자 흰 말이 나타납니다.
흰색은 성경에서 보통 거룩함과 승리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흰 말 탄 자를 그리스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맥을 자세히 보면 이것은 착각입니다.
요한계시록 19장 11절 이후에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도
흰 말을 타고 오십니다만, 그때는 많은 면류관을 쓰고
입에서 나오는 검으로 싸우십니다.
반면 오늘 본문의 말 탄 자는
활을 들고 한 개의 승리자 면류관을 받습니다.
6장의 흰 말 탄 자는 분명 평화의 옷을 입고 등장합니다.
이 모습만 보면 그가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구원자라고 할 만 합니다.
그는 세상적인 힘으로 정복하고 또 정복합니다.
하지만 이 흰 말 탄 자는 적그리스도입니다.
이렇게 거짓을 보여주는 사탄이
주님인 것처럼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화려하게 우리 눈을 속여서 빛의 천사로 등장합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리가 아닌 것이 진리처럼 포장되어 옵니다.
성경적이지 않은 가르침이
사랑과 포용이라는 이름으로 교회 안에 들어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분명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결코 무죄를 주장 할 수 없습니다.
그분 앞에서 서면 내 죄가 너무나도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런데, 세상적 사랑을 내세우며
교회는 내가 뭘 잘못 했길래 나를 죄인 취급하냐!
라고 교회가 잘못 됐다고 몰아세웁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거짓 가르침이 관용이라는 이름으로 퍼져갑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분별해야 합니다.
겉모습이 아니라 본질을 보아야 합니다.
흰 말이라고 다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2. 둘째 인: 붉은 말 - 전쟁의 시작 (6:3-4)
3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니
4 이에 다른 붉은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첫 번째 인이 가져온 거짓 평화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곧바로 붉은 말이 등장합니다.
이 기수는 땅에서 화평을 제거하는 권세를 받습니다.
여기서 땅에서 화평을 제거한다는 말은,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는 항상 어딘가에 전쟁이 있었지만,
동시에 어딘가에는 평화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환난 때는 다릅니다. 전 지구적으로 평화가 사라집니다.
단순히 국가 간의 전쟁만이 아니라 내전,
집단 간의 갈등, 심지어 가족 간의 살인까지 포함합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첫 번째 인의 적그리스도가 약속한 평화가 거짓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분노합니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24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듣겠으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리라"(마 24:6-7).
오늘 본문을 보고 있는 우리에게
주님이 주시는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참 평화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만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 경제, 군사력이 주는 평화는 모두 일시적입니다.
평강의 왕이신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른 평화를 주십니다.
지금 우리의 평화가 어디에 기초하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3. 셋째 인: 검은 말 - 기근의 도래 (6:5-6)
5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6 내가 네 생물 사이로부터 나는 듯한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하더라
전쟁이 오면 기근이 따라옵니다.
밭은 불타고, 농부는 징집되고, 경작할 시간도 환경도 사라집니다.
그리고 검은 말의 기수는 손에 시장에서 사용하는
저울을 들고 이렇게 말합니다.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이 본문은 세상의 경제적 타락을 고발하는 내용입니다.
세상이 만들어내는 불평등의 극단적 모습입니다.
재난 앞에서도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지고,
부유한 자는 자신의 부를 지킵니다.
한 데나리온은 하루의 품삯입니다.
밀 한 되는 겨우 두 손에 움켜쥘 수 있는 양입니다.
한 사람이 하루 먹을 양입니다.
하루 종일 일해서 번 돈으로
그날 먹을 빵 한 개밖에 살 수 없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입니다.
보리는 밀보다 싼 가난한 사람들의 양식입니다.
같은 돈으로 보리는 석 되를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가족 전체가 먹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반면,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는 것은
부자들이 사용하는 올리브유와 포도주는 가만히 두라는 말입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가 반면교사 삼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오늘 먹을 것이 있다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한 우리는 가난한 자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이 만들어내는 불평등을 그대로 답습해서는 안 됩니다.
4. 넷째 인: 청황색 말 - 사망과 음부 (6:7-8)
7 넷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말하되 오라 하기로
8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의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
네 번째 인은 앞의 세 인의 논리적 결과입니다.
전쟁과 기근이 왔으니 이제 죽음이 옵니다.
청황색은 시체의 색깔입니다. 생명이 빠져나간 몸의 색입니다.
기수의 이름은 "사망"이고, 음부가 그 뒤를 따릅니다.
사망이 사람들을 죽이면, 음부가 그 영혼을 삼켜버립니다.
본문은 네 가지 죽음의 방법을 열거합니다.
전쟁으로 죽고, 굶주림으로 죽고, 전염병으로 죽고, 야생동물에게 죽습니다.
그리고 무서운 통계가 나옵니다.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현재 세계 인구가 약 80억 명이라면, 20억 명이 죽는다는 의미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죄가 만들어내는 최종 결과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롬 6:23).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십자가를 기억해야 합니다.
이 사망과 음부를 이기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에게는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다.
5. 다섯째 인: 제단 아래의 영혼들 - 순교자의 부르짖음 (6:9-11)
5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다섯째 인은 앞의 네 인과 성격이 다릅니다.
이번에는 재앙이 아니라 사람들이 보입니다.
제단 아래에 있는 영혼들입니다.
환난 중에 예수님을 믿었다가 순교당한 성도들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진리가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땅에 쏟아질 때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킵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죽임을 당합니다.
이 순교자들은 큰 소리로 부르짖습니다.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이것은 공의의 실현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언제까지 악이 승리하는 것을 보아야 합니까?
언제쯤 하나님의 정의가 이 땅에 실현됩니까? 하는 절규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각각 흰 두루마기를 주십니다.
이것은 그들의 의로움을 인정하시고, 영광을 약속하시는 표시입니다.
순교는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실현됩니다.
늦어지는 것처럼 보여도 결코 취소되지 않습니다.
6. 여섯째 인: 우주적 격변 - 하나님의 진노 (6:12-17)
12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여섯째 인이 떼어지자 우주적 재앙이 쏟아집니다.
큰 지진, 해가 검어지고, 달이 피같이 되고, 별들이 떨어지고,
하늘이 두루마리 말리듯 사라지고, 산과 섬이 자리에서 옮겨집니다.
이것이 문자적인지 상징적인지에 대해 학자들이 논쟁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것이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규모의 재앙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반응합니다. 15-17절을 보면,
임금도, 왕족도, 장군도, 부자도, 강한 자도, 종도, 자유인도
모든 사람이 똑같이 두려워합니다.
재난 앞에 신분의 차이가 없습니다. 돈도 권력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들은 굴과 바위 틈에 숨으면서 부르짖습니다.
바위에 깔려 죽는 것이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깨닫습니다.
지금까지 은혜와 사랑으로만 알았던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진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마지막 질문이 울려 퍼집니다.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답은 하나입니다.
오직 어린 양의 피로 씻음 받은 자만 설 수 있습니다.
진노의 날에 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지금 어린 양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여섯 개의 인이 떼어질 때마다 쏟아지는 재앙들과
제단 아래 순교자들의 부르짖음
그리고 모든 사람을 두렵게 만드는 하나님의 진노를 보았습니다.
우리가 본 말씀들이 현실이 되면 얼마나 두렵고 떨리겠습니까,
하지만 요한계시록은 두려움의 책이 아닙니다. 소망의 책입니다.
심판이 있습니다. 환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을 주관하시는 분은
우리를 사랑하사 십자가에서 죽으신 어린 양이십니다.
제단 아래의 순교자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입히시는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기억하십니다.
환난 중에도 당신의 백성을 지키시고, 결국 영광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깨어서 분별하고 믿음 잃지 않고 준비하면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때
우리에게는 구원이라는 선물을 허락해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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