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취보다 중요한 것들
오늘 본문은 인간의 위대함을 드러내려다가
하나님께서 다 무너뜨리신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 중에 가장 위대하게 지어졌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인류가 이루어낸 그동안의 역사를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와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가지고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해 맡겨주신 이 땅에 번성하고
충만하여졌고 다스리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바벨탑 사건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것들을 가지고 열심히 탑을 세워나갑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시고 그 일을 멈춰세우십니다.
인간들이 잘 살아보겠다고 열심히 세워나갔던 탑 건설은 멈추고
오히려 흩어져 살게 됩니다.
세상적으로보면, 하나님께서 왜 잘 세워가던 탑을 멈춰세우셨는가,
하나님의 백성이 돋보이게 하실 수 있고
그것을 오히려 이용하셔서 하나님 자신의 영광이
만 천하에 드러나서 다른 민족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자 할 수 있지 않나,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의 방식으로 성공하는 공식대로 잘 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성공, 성취보다
중요한 원리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기준(중심)으로 하여 나와 하나님,
나와 타인, 나와 세상을 바라보는 균형잡힌 관계를 세워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그분만을 섬기는 백성이라는 올바른 신앙의 관계를 세우기를 소망합니다.
문제는 방향, 하나님 기준에서 멀어진 이들
홍수 이후 번성하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것이 어려워지지
점점 살기 좋은 곳을 찾아나섭니다.
그래서 2절을 보면, 동방으로 이동하다가 시날 평지에서 멈춰섭니다.
동방으로 이동하다 멈춰선 곳 시날,
이곳은 인간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아도 되는,
인간이 자기 뜻을 펼칠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풍요롭게 살 수 있는 바로 그러한 여건이
눈에 보이고 하나님이 가려져 보이지 않는 영적 무지,
영적 교만의 땅까지 나아갔고 그렇게 하나님과 멀어져버렸습니다.
문제는 건축 의도
4절,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지금 이들의 말 속에는 하나님이 빠져 있습니다.
이들이 건축하는 의도에는 하나님이 기준점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이 기준 되지 못하니
인간이 기준 되어 자신의 이름을 높이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내가 이루어낸 성과, 내 노력, 내 시간, 내 소유, 내 능력
이런 것들이 곧 내가 만든 신이 되어버립니다.
심판의 의도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언어에 혼선을 주시면서
결국 탑 건축이 멈추고 자연스럽게 분열되게 하십니다.
무엇이든 다 해낼 수 있다는 교만이 드디어 꺾였습니다.
얼마나 기고만장했습니까. 단지 말이 통하지 않자
스스로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고대 제국들이 거대한 힘과 체제를 유지하는 방식을 보면
강력한 힘과 함께 문화를 지배했고 그 중에는 언어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 제국의 언어를 흩으시면서 질서를 깨뜨리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들이 자신들의 언어가 하나여서
중요한 관계 가운데 언어였던 하나님과 소통하는 언어와 그 교제를
무너뜨렸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벨탑 사건의 핵심입니다.
혼돈이 정리되는 시간
바벨탑 사건 이후, 성경은 흩어진 민족들의 목록을 기록합니다.
언어가 나뉘고 사람들이 제각각 흩어지는 이 장면은
겉으로는 완전한 혼돈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 이것은 혼돈이 아니라 질서의 회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무질서한 연대,
하나님 없는 하나됨을 허무시고
오히려 그 흩어짐을 통해 땅 위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순간이 찾아옵니다.
내가 열심히 쌓아 올리던 것들이 무너지고, 계획이 어긋나고,
관계가 흩어지는 것 같은 순간들.
그 시간이 우리에게는 혼돈처럼 느껴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시간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중심에 두고 살아왔는지를 정리하게 하십니다.
인간의 이름을 높이려 했던 탑이 멈춰야,
비로소 하나님의 이름을 바라볼 공간이 생깁니다.
혼돈이 정리되는 그 시간은,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기준을 다시 세우시는 은혜의 시간입니다.
데라의 족보에 켜진 빨간 불, 결핍 속에서 다시 보이는 하나님
바벨탑 이야기가 끝나고 성경은 곧바로 데라의 족보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 족보를 읽다 보면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데라의 아들 하란은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납니다.
그리고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는 여인,
즉 자녀가 없는 여인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족보란 생명이 이어지는 기록인데, 이 족보 안에는
죽음과 단절과 결핍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빨간 불이 켜진 것입니다.
데라는 가나안 땅을 향해 길을 나서지만, 하란 땅에서 멈춰버립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목적지에 닿지 못한 삶,
완성되지 못한 여정. 인간의 눈으로 보면
이 족보는 실패와 결핍의 기록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등장하십니다.
자녀도 없고, 가야 할 땅에 닿지도 못한 바로 그 결핍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성취 위에 임하시는 분이 아니라,
인간의 결핍 앞에 서시는 분입니다. 바벨에서 인간은
자신의 이름을 내려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제 아브람을 통해
당신의 이름을 나타내실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우리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지금 내 삶에 켜진 빨간 불은 무엇입니까?
채워지지 않는 결핍, 완성되지 못한 계획,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 결핍의 자리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자리에서 우리를 부르시고,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새롭게 쓰기 시작하십니다.
성취가 아닌 믿음으로, 내 이름이 아닌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 세우며 살아가는 삶.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부르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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