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제, 16세에 왕이 되어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으로 유다를 강대국으로 만들었던 웃시야의 성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6절은 우리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이런 문장은 안나왔으면 좋겠는데...어김없이 나온다.
16절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아시다싶이 인생의 진짜 위기는 고난의 골짜기를 지날 때가 아닙니다.
고난은 우리를 겸손케 합니다.
고난은 주님을 더 의지하게 만듭니다.
오히려 모든 것이 잘 풀리고, 내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고,
내 힘으로 다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강성함의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입니다.
기이한 도우심을 주셨던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오직 그 도우심의 결과인 ‘강성함’에 취해버릴 때,
사람은 은혜를 망각한 괴물이 됩니다.
이 교만함이라는 독이 퍼지게 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먼저는 하나님의 ‘선’을 넘기 시작합니다
16절을 계속 보시면 웃시야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 나옵니다.
16절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이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닙니다.
당시 분향은 누가 할 수 있었나?
오직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만이 할 수 있는 거룩한 직무였습니다.
웃시야는 왕으로서 정치, 군사, 경제 모든 분야의 권력을 가졌습니다.
그러자 이제는 자신이 할 수 없는 영역, 영적인 권위까지 독점하고 싶어진 것입니다.
“내가 이 나라를 이만큼 키웠는데, 분향 좀 하는 게 어때서?”라는 교만이 발동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만은 ‘선’을 넘게 만듭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한계, 내게 맡겨진 직분의 자리를 이탈하는 것이 죄입니다.
내가 잘나간다고 해서 모든 영역의 주인공이 되려 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질서를 무시하고 내 마음대로 하려는 그 열심은 신앙이 아니라 탐욕입니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것이 복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교만함이라는 독이 퍼지게 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책망을 들을 때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제사장 아사랴와 용맹한 제사장 80명이 목숨을 걸고 왕을 막아섭니다.
17-18절 제사장 아사랴가 여호와의 용맹한 제사장 팔십 명을 데리고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가서 웃시야 왕 곁에 서서 그에게 이르되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은 왕이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
이때 웃시야가 어떻게 반응합니까?
아차! 내가 잘못했구나! 회개합니까? 내가 선을 넘었구나! 용서를 구합니까?
19절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에게 화를 낼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긴지라
화를 내요!
여기서 우리는 교만의 무서운 증상을 봅니다. 바로 ‘분노’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올 때, 누군가 나의 잘못을 직언해 줄 때,
그것을 ‘은혜’로 받지 못하고 ‘화’를 냅니다.
“네가 뭔데 감히 나한테 이런 말을 해?”라며 독기를 품습니다.
여러분, 늘 말씀드리지만 말씀이 우리를 찌를 때, 내 자존심이 상할 때
가끔은 아프게 들릴 때가 이것이 사실은 우리 영혼이 살 기회입니다.
그런데 웃시야는 그 마지막 기회의 순간에 분노의 향로를 끝까지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누군가의 조언에 대해 불같은 화가 올라오고 있다면,
지금 내 안에 교만이라는 나병이 퍼지고 있다는 신호임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결국 이 교만의 독이 퍼지면 어떻게 되나?
‘거룩한 공동체’로부터 격리됩니다
왕이 화를 내는 그 순간, 하나님의 심판이 임합니다.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겼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웃시야 왕이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었고 나병환자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져 별궁에 살았으므로 그의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백성을 다스렸더라
그토록 성전을 사랑하여 수리하고 제사를 도왔던 왕이,
이제는 성전에 발도 들여놓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외딴 별궁에 갇혀 지냈습니다.
52년의 화려한 웃시아의 통치가 마지막은 이렇게 비참하게
‘격리되고’ ‘고립’으로 끝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교만은 결국 우리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믿음의 공동체로부터 소외되게 합니다.
하나님 없이 강해진 결과가 고작 ‘별궁’에서의 쓸쓸한 종말입니다.
여러분, 마지막까지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인생이 되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강성해질 때 더욱 엎드리십시오. 높아질 때 더욱 낮은 곳을 바라보십시오.
말씀을 맺겠습니다. 웃시야의 전반전은 ‘기이한 도우심’의 역사였으나,
후반전은 ‘교만한 범죄’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내가 강해졌을 때, 내가 무언가 이루었을 때,
그때가 바로 가장 떨며 주님 앞에 엎드려야 할 때입니다.
웃시야처럼 별궁에 갇히는 인생이 아니라,
끝까지 주님의 성소 안에서 찬송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인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번 한 주간, 내게 주신 성공과 강성함이 내 실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이었음을 다시 한번 고백하십시오.
그 겸손의 향로를 들고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여러분의 삶의 지경이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아름답게 완주하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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