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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5일] 아브람과 두 명의 왕 (창 14:1-24)
 
[4월 15일] 아브람과 두 명의 왕 (창 14:1-24)
2026-04-14 16:49:07
손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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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4장은 아브람 당시 그가 머무르던 가나안 땅을 휩쓴 큰 전쟁을 이야기합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는 했으나

12장에서 부부 간의 위험, 13장에서 가족 간의 위험, 급기야 14장에서는 전쟁의 위험까지 그에게 다가오는 시련은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는데 왜 자꾸 시련이 오는가? 로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시련 때문에 하나님의 부르심은 더 선명하게, 더 강하게 다가옵니다.

그 부르심이 아브람의 삶을 붙드는 은혜가 있습니다.

 

오늘의 전쟁은 시날, 엘라살, 엘람, 고임, 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소알

모두 9개 나라의 왕들이 모두 엮인 큰 전쟁입니다. 세계대전 같은 느낌입니다.

동방의 왕 아므라벨, 아리옥, 그돌라오멜, 디달이 서로 동맹을 맺고

사해 근처의 왕 베라 비르사 시납 세메벨을 공격합니다.

 

 

전쟁의 속성 자체가 내가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해지는 성질은 애초에 아니지만,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식민지 조선의 젊은 남자들은 총알받이로,

젊은 여자들은 성 노리개로 끌려갔던 참혹한 역사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세계대전은 더욱 그렇습니다. 도망갈 곳이 없습니다.

 

결국에는 사해 근처의 왕들이 패해서 도망합니다. 온 가나안이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9개 나라가 아닌 아모리 족속에게까지 영향이 미쳤고

조카 롯을 도시로 떠나보내고 여전히 목초지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아브람도 전쟁의 소용돌이를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소돔이 공격당하고 그곳에서 살던 롯도 포로로 잡혀갔기 때문입니다.

 

14절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아브람은 그가 거느리고 있던 장정(壯丁) 318명을 데리고 출동합니다.

그냥 장정도 아닙니다. 훈련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막연한 젊은이도 아니고

어느 정도 인생 경험이 있는, 결혼해서 처자식이 딸린 남자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자녀를 적게 출산하는 오늘의 기준으로 낮춰 생각해도

장정 300명이 넘는다? 그 뒤에 있을 여인들과 어린 자녀들을 다 합치면

최소 1,000명이 넘는 엄청난 숫자가 있다는 것을 쉽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한 부족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숫자입니다.

아브람의 부족은 이미 많은 숫자로 불어나 있었습니다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하신 복은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14절 단까지 쫓아가서...15절 다메섹 왼편 호바까지 쫓아가서...16절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

기간이 얼마나 걸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들은 단을 넘어 다메섹까지 적을 추격합니다.

성경에서 우리가 자주 보는 관용어구인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라는 말은 이스라엘 국토의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를 말합니다.

단까지 갔다는 말은 가나안 땅 북쪽 끝까지 밀어붙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심지어 다메섹은 가나안 땅도 아닙니다아브람과 그의 장정들 기세가 얼마나 무서웠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수많은 나라와 왕들이 뒤엉킨 세계대전 한복판에서 아브람과 그의 사람들은 용맹을 떨칩니다.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모릅니다. 어깨가 충분히 으쓱해 질법한 상황입니다.

 

18절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러나 아브람은 침착함을 유지합니다.

개선하는 아브람을 환영하기 위해 나온 멜기세덱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보면 됩니다.

사실 멜기세덱은 이번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자이거나 어느 한 편을 든 적은 없으나

먼 원정길을 떠나 승리를 거두고 돌아온 아브람 일행을 맞이합니다.

전쟁 이전이면 의리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미 승패가 확정된 상황에서 아브람을 환대하려는 것은 너무 속 보이는 행동이 아닙니까?

그런데 아브람은 멜기세덱이 자기보다 영적으로 우위에 있는 사람임을 인정했습니다.

(19) 그로부터 축복을 받았고, (20) 전리품의 십 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큰 승리 이후에도 아브람은 온유하고 겸손했습니다.

뒤의 22절을 보시면 이 모든 승리가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사장 멜기세덱에 대해서는 그의 정체부터 시작해서 그가 등장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브람을 축복한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십일조처럼 보이는 내용조차도 구약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지금까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특정 구절이 아니라 14장 전체의 흐름을 보는 오늘의 경우에는 그렇게까지 시간을 들여가며 따로 이 구절만 집중할 이유는 없으니

뒤와 연결해서 바로 보도록 하겠습니다.)

 

21절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

아브람을 성대하게 환영한 멜기세덱이 있었는데

하필 바로 뒤에 소돔 왕이 나오는 바람에 더욱 비교됩니다.

소돔 왕은 죽을 뻔하다가 아브람 덕분에 모든 것을 되찾았는데도 아브람을 위해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개선하는 이들에게, 게다가 자기 목숨과 왕국을 구한 이들에게 선물을 가지고 나오는 것은 기본적인 예의였던 시대에

소돔 왕의 이런 행태는 그가 여전히 거드름을 부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센 척, 강한 척하며 굽힐 줄 모르는 전형적인 세상의 모습입니다.

오히려 아브람을 상대로 거래하려고 합니다선심 쓰는 척 (21) 되찾은 포로들을 본인에게 다 보내라고 합니다.

지금 누가 누구한테 이래라저래라 할 상황이 아닌데 본인만 모릅니다.

아브람이 포로도 내 것이고, 전리품도 내 것이라고 소리를 높여도

꿀 먹은 벙어리여야 할 판인데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있습니다.

 

사실 소돔 왕의 제안은 매력적입니다. 엄청난 재물이 생길 기회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재물보다 더 지속할 수 있는 것,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원했습니다.

아브람은 자신이 더 번성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자기에게 복을 주시는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22절 천지의 주재이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23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致富)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더 큰 받을 것을 아는 사람은 작은 것에 아웅다웅하지 않습니다.

아브람은 진정한 강자가 어떻게 처신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소돔 왕은 거드름을 부릴 뿐이지만 아브람은 부드럽게 그것을 돌이킵니다.

세상이 약속하는 부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복을 바라기에 가능한 담대합니다.

 

똑같은 예가 있습니다신약으로 넘어와서 마귀가 예수님을 광야에서 유혹하지 않습니까?

세상의 모든 것을 주겠다고 하는데도 예수님은 말씀으로 물리치십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예수님 자신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니시라는

분명한 자기의식, 메시아 의식이 있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세상 것을 부러워할 이유가 애초에 없습니다.

 

아브람을 존귀하게 하시는 분은 소돔 왕이 아닙니다. 세상 존재가 아닙니다.

그렇기에 괜히 양다리 걸치고 있을 필요 없이 깔끔하게 손을 들어 맹세합니다.

진정한 강자가 보일 수 있는 진정한 멋입니다.

 

소돔 왕은 우리에게 그럴듯한 것으로 유혹하지만 본질은 별 볼 일 없는 존재입니다.

그와 손잡을 필요도 없고 괜히 같이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가 오히려 당당하게 세상과 손절할 때 이제 뒤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15장의 언약대로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복이 되실 줄로 믿습니다.

 

두 왕 중 어느 왕의 손을 잡으시겠습니까? 

참된 왕의 손을 잡으심으로써 하늘의 복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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