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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0일] 온전하지 못한 마음은 위험한 신앙입니다. (대하 25:1-16)
 
[4월 10일] 온전하지 못한 마음은 위험한 신앙입니다. (대하 25:1-16)
2026-04-09 17:00:00
최종운
조회수   22

오늘 우리는 요아스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아마샤를 만납니다.

2절은 그의 인생을 아주 묘하게 평가합니다.

2절 아마샤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기는 하였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참 안타까운 문장입니다.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믿기는 하는데 '적당히' 믿는 것입니다.

예배는 드리는데 '온전한 중심'은 없는 상태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불신앙보다 더 무서운 것이 어떻게 보면, '적당한 신앙'입니다.

불신앙은 기회가 돼서 회개하고 돌아설 수 있지만

적당한 신앙은 신앙에도 발을 걸치고 있어서 객관적으로 자기를 돌아보지를 못한다.

 

오늘 아마샤가 보여준 선택과 갈등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온전한 마음'이 무엇인지 함께 나누며

우리 자신의 영적 주소를 점검해보길 소망합니다.

 

아마샤는 에돔과의 전쟁을 준비하며 유다 군대만으로 부족하다고 느껴,

은 백 달란트를 주고 이스라엘 용병 십만 명을 삽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람이 나타나 경고합니다.

 

7절 어떤 하나님의 사람이 아마샤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왕이여 이스라엘 군대를 왕과 함께 가게 하지 마옵소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곧 온 에브라임 자손과 함께 하지 아니하시나니

 

이미 은 백달란을 주고 용병을 샀는데

갑자기 이스라엘하고 같이 가지 말라고 하는데,,,
지불한 이 돈이 얼마나 아깝나?

 

여기서 우리는 첫 번째 순종의 걸림돌이 뭔지 나온다.

언제나 '손해에 대한 계산'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니 아까운 것이 생깁니까?

"이 돈이 얼마인데, 이 기회가 어떤 기회인데!"라고 주저하고 계십니까?

 

그때 하나님의 사람은 선포합니다.

9절 아마샤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내가 백 달란트를 이스라엘 군대에게 주었으니 어찌할까 하나님의 사람이 말하되 여호와께서 능히 이보다 많은 것을 왕에게 주실 수 있나이다 하니라

 

보십시오, 하나님의 계산법은 우리의 계산법과 다릅니다.

여호와께서 능히 이보다 많은 것을 왕에게 주실 수 있나이다.

이것을 믿으십니까?

 

백 달란트 아까워하다가 하나님의 임재를 놓치지 마십시오.

백 달란트 아까워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지 마십시오.

 

아마샤는 백 달란트라는 '숫자'에 묶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능히 이보다 많은 것'이라는 무한한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말씀앞에 순종하기 어려운 이유는 하나님을 백달란트보다 '작은 분'으로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을 내가 붙들고 있는 그 돈보다 작게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보다 이 돈을 붙잡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온 우주의 주인이십니다.

믿으십니까?

 

우리도 때론 하나님의 말씀앞에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앞에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말씀 때문에 포기한 것이 있습니까?

믿음 때문에 손해 본 것이 있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 때문에 손해 본 자녀를 반드시 책임지십니다.

백 달란트의 두려움을 넘어서는 '능히 더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여러분의 삶을 지탱하는 진짜 실력이 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그 이상의 것으로 채워주시는 분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아마샤는 말씀에 순종하여 용병들을 돌려보냅니다.

그 결과?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에돔과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둡니다.

 

그런데 이렇게 믿음으로 승리하고 돌아오는 데...

또 기막힌 일을 저지릅니다.

에돔 사람들이 섬기던 우상들을 가져와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 앞에 분향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 상황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뭡니까?

여러분, 일이 잘 풀릴 때 조심하십시오.

 

성공의 정점이, 내가 이루었다 생각하던 이 자리가

영적으로 긴장이 풀리는 시간이고

가장 분별력을 잃어버릴 수 있는 시간입니다.

 

목회자들도 주일 사역 마치고

집에 갔을때가 영적 긴장이 흐려질때가 가장 방심하기 쉬울때거든요.

 

이 전쟁을 하나님이 이기게 하셨는데,

정작 아마샤는 패배한 나라의 우상을 가져왔습니다.

 

내 힘으로 이룬 줄 착각하는 순간,

우리는 정복했던 세상의 가치관에 거꾸로 정복당하게 됩니다.

승리 뒤에 무릎 꿇지 않으면, 그 승리가 나를 죽이는 칼날이 됨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자 하나님은 다시 선지자를 보내 아마샤를 책망하십니다.

15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아마샤에게 진노하사 한 선지자를 그에게 보내시니 그가 이르되 저 백성의 신들이 그들의 백성을 왕의 손에서 능히 구원하지 못하였거늘 왕은 어찌하여 그 신들에게 구하나이까 하며

 

그러나 아마샤는 어떻게 하나?

회개 대신 화를 냅니다.

 

16절 선지자가 아직 그에게 말할 때에 왕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왕의 모사로 삼았느냐 그치라 어찌하여 맞으려 하느냐 하니 선지자가 그치며 이르되 왕이 이 일을 행하고 나의 경고를 듣지 아니하니 하나님이 왕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신 줄 아노라 하였더라

 

"우리가 너를 왕의 모사로 삼았느냐? 그치라 어찌하여 맞으려 하느냐?"

선지자의 입을 막아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책망'하실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내신 것은 아직 기회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듣고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마샤는 자존심 때문에 그 마지막 생명줄을 스스로 끊어버렸습니다.

여러분, 말씀이 아프게 들릴 때가 복된 때입니다.

"목사님이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린가?" 싶을 때가

하나님이 여러분을 살리시려는 긴급 신호입니다.

 

그땐 내 귀를 막지 말고 마음을 여십시오.

책망을 거절하는 인생은 멸망을 선택하는 인생임을 기억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마샤의 시작은 창대했으나 그 끝은 비극의 서막이었습니다.

정직하게 행하는 척했지만, 그 중심에 하나님이 온전히 계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온전하십니까?

혹시 한 발은 교회에, 한 발은 세상의 백 달란트에 걸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손해 볼까 두려워하지 말고 말씀의 길을 택하십시오.

승리했을 때 더욱 겸손히 주님 앞에 엎드리십시오.

 

그리고 때로 하나님의 아픈 책망을 보약으로 삼으십시오.

'능히 이보다 많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함으로,

절반의 신앙이 아닌 100% 순전한 믿음의 길을 걷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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