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어떤 분들은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렇게 곤경에 처한 이유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가라고 한 땅에서 이탈해서 그랬다는 해석을 하십니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나 핵심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주신 땅은 약속의 땅이 맞으나
그 약속을 통해 흐르는 복(福)이 특정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선 그어놓고 벗어나면 벌주고 선 안에 있으면 복 주는 유치한 신이란 말입니까?
가나안을 벗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저주를 받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미신이고 샤머니즘 아닙니까? 전래동화 같은 소리입니다.
아브람이 애굽에 들어간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예배가 끊어졌다는 사실이 진짜 문제입니다.
나중에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염려하는 장면이 잠시 나옵니다.
(출 8:26)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축을 잡아서 제사 지낸다면
애굽 사람들이 돌로 칠 정도로 대단히 싫어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애굽 사람들은 가축을 신성하게 여겼기에
애굽에 들어간 아브람이 제사를 계속 드릴 수 있었을 리가 없습니다.
진짜 문제는 장소의 문제를 넘어, 예배의 문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곤경을 허락하시면서까지 돌아오기를 원하셨던 자리는
장소로서의 가나안을 뛰어넘어서 ‘예배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분은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스스로 충만한 분이시지만
놀라울 만큼 역설적으로 인간과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인간과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a. 하나님이 왜 이러시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신비의 영역입니다.
b. 도무지 이해는 안 되지만 하나님께서 오시니, 인간에게는 엄청난 영광의 영역입니다.
두 영역의 교집합(交集合)이 바로 은혜입니다.
우주 만물 중 오직 인간만이 누리는 호사(豪奢)입니다.
4절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네게브(남방, 가나안 땅의 남쪽 경계)를 넘어 벧엘에 도착하자마자
아브람은 또 제단을 쌓고 또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눈에 보이는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다, 를 넘어서야 합니다.
그가 예배의 자리로 돌아왔구나! 까지 보이셔야 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오자마자 제단을 쌓았다는 것은
그가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알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왜 자기를 다시 이곳으로 부르셨는지를 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복을 받는다고 하면 부귀영화를 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브람 가족에게는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12:6에서 아브람은 바로의 후한 대접 덕분에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은혜로 생겼을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 같으면 이렇게 얻은 것이 행운이다, 재산을 지켜야 한다, 불려야 한다, 어떻게든 자기 확장의 방향으로 생각할 텐데
6절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7절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이제는 많은 소유가 오히려 가족이 갈라서는 계기가 됩니다.
세상의 시야로 본다면 사람 일은 알 수 없다 정도로 말할 수 있겠지만
- 12장에서 처음 아브람을 부르셨던 하나님의 뜻과
- 그 뜻을 이어받아 가는 곳마다 제단을 세운 아브람을 생각한다면,
-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면
진짜 복의 자리, 예배의 자리로 아브람을 부르기 위해 거짓 복, 가짜 복을 털어내시려는 하나님의 손이 보여야 합니다.
진정한 복이란 세상의 무엇인가를 더 차지하고 덜 차지하고가 아니기에 아브람은
9절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초연한 태도를 보입니다. 이것은 자포자기한 사람의 삶이 아닙니다.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선순위를 분간할 줄 아는 사람의 삶의 태도입니다.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2순위, 3순위가 어찌 되어도 덜덜 떨지 않습니다.
10절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13절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롯이 소돔으로 장막을 옮길 때 이미 소돔에 대한 소문은 자자했습니다.
롯이 그것을 모르는 채로 그곳에 갔을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나를 진정한 복의 자리, 예배의 자리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손을 보지 못하면
내 눈에 보이는 대로 결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는 우리가 모두 아는대로입니다.
반면 14절부터 17절까지 하나님의 의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습니다.
중간에 바뀌지도 않고, 애매하게 헷갈리지도 않습니다.
명확하게 한 방향을 말씀하십니다. 말씀이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한결같이 똑같은 말씀을 수천년 동안 변하지도 않고 하시는데
올바르게 순종하기 싫은 인간의 몸부림만 있을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14절부터 17절을
아브람 뿐만 아니라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나를 통해 수많은 육적 자손, 영적 자손들이 하나님의 꿈, 예배공동체의 꿈, 구원의 꿈에
동참하게 될 것이라는 그 약속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함께 읽고 오늘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14절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절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절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절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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