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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9일] 자랑인가, 사랑인가 (고후 11:1-15)
 
[4월 29일] 자랑인가, 사랑인가 (고후 11:1-15)
2025-04-29 00:00:00
손병호
조회수   61

 

 

우리 한국인만큼 부지런한 사람들도 찾기 힘듭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일터로 갑니다. 7, 8시면 이미 지하철과 버스는 만원입니다정말 하루 종일 일합니다.

- 아무리 법으로 근무시간을 제한한다고 하지만 차라리 더 일하고 더 돈 벌겠다는 사람들은 한국에만 있고

- 일하다가 스트레스받고 병들고 쓰러진다는 말도 한국에만 있는 말입니다.

- 제아무리 워라밸을 외친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세계 최고의 근무시간을 자랑합니다.

외국인들은 그 어느 것 하나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교회도 만만치 않습니다. 한국인 특유의 부지런함이 다른 데 가지 않습니다.

교인이라고 노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일주일 내내 직장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좀 쉬고 싶을 법한데

주일에도 열심히 일합니다각종 다양한 예배와 다양한 사역이 있습니다. 일주일 중 주일을 가장 열심히 일합니다.

신앙생활도 개미 떼처럼 붙어서 회사 일처럼 해치우는 우리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열심히 합니까?

이 질문에 부딪혔을 때 대답할 말이 있어야 흔들리지 않을텐데 말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달리십니까?

 

2절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열심으로 번역된 이 단어를 헬라어 원어와 영어 성경에서는 질투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냥 원래 뜻대로 질투라고 해도 옳을 텐데 우리의 신앙 선배들이 이 단어를 굳이

열심(熱心), 뜨거운 마음이라고 번역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 질투합니까? 사랑하기 때문에 질투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사랑의 온도에 따라서 질투의 강도도 비례한다는 점입니다.

아가(雅歌)에서는 그 질투의 세기를 여호와의 불(8:6)과 같다고 합니다.

한낱 (인간의) 감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을

만물을 불살라버리는 하나님의 불과 감히 비교할 정도로 사랑은 대단한 힘을 가집니다.

그래서 열심, 뜨거운 마음입니다.

 

무엇을 위해 질투합니까, 무엇을 위해 뜨거운 마음을 가집니까?

 

사람의 열정은 대부분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열심히 살아서 무엇인가를 이룩하려고 하는 사람도 있고열심히 사는 그 자체를 뿌듯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이 정도로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라는 자기만족이지요. 나쁜 것은 아닙니다.

이 정도에서 조금 울타리가 넓어져봤자 자기 가족부양입니다.

배우자와 행복한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 혹은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서 열심을 내어 삽니다.

뜨거운 마음을 가지는 원인이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자랑을 위해 달립니다.

 

그런데 오늘 바울의 뜨거운 마음은, 그의 질투는 좀 희한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유가 그에게 있습니다.

 

2절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고린도 교회의 교인을 (2)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해서 생기는 질투입니다.

남녀가 반드시 연결되었으면 좋겠다는 뜨거운(?) 중매쟁이의 마음입니다.

 

사실 모든 중매하는 사람들이 이렇지는 않습니다. 여러분도 그러시지 않습니까?

저도 여러 청년을 중매해 봤고 실제로 결혼까지 성사하고 주례까지 한 커플들도 있습니다만

당연히 실패도 숱하게 경험해 봤습니다. 그러면 제가 소개한 청년들이 헤어질 때마다 가슴을 치며 아파하겠습니까?

그렇진 않습니다청년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엄연히 남인 것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소개해 준 사람과 잘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알아서 잘 찾아가겠지,

성인인데, 자기 인생 자기가 사는 거지, 하는 헛헛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말씀에서 만난 이 중매쟁이는 독특합니다.

반드시 결혼성사까지 시키고 말겠다는 불타오르는 의지로 충만합니다.

왜 그럴까요? 역설적으로 신부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입니다(신랑은 우리 주님이시니 논외로 합시다.)

 

신부를 사랑하는 중매쟁이라니요. 그러면 중매쟁이가 신부의 아버지라면 어떻겠습니까?

내 딸이 기필코 좋은 남자를 만나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으면 좋겠다는 의지로

(여호와의 불을 생각해 보십시오) 불타오르지 않겠습니까?

남이 아닙니다. 아버지입니다. 딸이 잘될 수만 있다면 간()이라도 꺼내줄 판입니다그래서 질투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바울은 아버지의 심정으로 교인들을 생각합니다.

예수를 알면 좋고, 모르면 할 수 없고 식의 미지근함이 아니라

(3)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할 정도로 바울의 마음은 진심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진심임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계속 바울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5절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로 생각하노라.

바울의 대적자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을 지극히 크다라고 했습니다.

 

크다는 표현은 사도행전 19장에서 바울이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할 때 아르테미스 신()을 섬기는,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

바울 때문에 우상 팔이하는 자기들 생계가 위협받는다고 생각하고 총궐기해서 시위할 때 외친 구호입니다.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19:28)” 이 구호를 온 도시가 분노에 가득 차서 2시간이나 외쳤습니다오싹한 장면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 바울을 반대하는 고린도 교인들, 정확하게는 바울의 반대자들이 하는 말이

예수 안 믿는 사람들과 똑같습니다말만 나는 예수 믿는다 하지, 안 믿는 사람들과 말과 삶이 똑같은 것입니다.

 

사도행전 19장에서 에베소 사람들이 정말 아르테미스 신을 사랑하고 경배해서

그렇게 (2) 열심을 내어서 외쳤겠습니까?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들은 대놓고 (19:25)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우상 만드는) 이 생업에 있는데 (19:26) 바울이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19:27)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말합니다.

바울이 자꾸 전도하면 사람들이 우상 안 사 갈테고 그럼 우린 돈 떨어지니 망하는 것이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이라지만 얼마나 솔직하고 명쾌합니까?

속으로 계산기가 빠르게 돌아가지만, 아닌 척하는 우리보다 훨씬 나은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말씀에서 만난 고린도 교인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이 정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을 존중해서 지극히 크다라고 했겠습니까?

순전히 바울의 권위를 깎아내리기 위함입니다. 목적은 다른 데 있습니다엉큼합니다. 속이 환하게 보입니다.

이런 (13) 거짓 사도, 속이는 일꾼,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

보면서 바울이 얼마나 속상했겠습니까? 딸을 엄한 남자에게 빼앗기는 아버지의 심정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지도자 뿐 아니라 교인들도 바울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7절 내가...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바울이 고린도 교회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받지 않은 일은 순전히 교회를 위함이었습니다.

사도가 생계를 위해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교회와 교인을 위해 사역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바울은 자비량으로 사역합니다.

 

(8)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비용을 받은 것은

심지어 다른 교회의 후원을 받아 고린도 교회를 섬깁니다.

그런데 바울의 대적자들은 바울이 남의 교회를 탈취해서 우리를 돕는 척 한다, 생색을 낸다고 했습니다.

8절에서 탈취했다는 바울의 말은 대적자들의 말을 비아냥거리는 바울의 조롱입니다.

이처럼 바울의 선의까지도 대적들에게는 도리어 공격의 빌미가 됩니다.

 

바울의 진심은 끊임없이 공격당하고 의심받습니다. 억울합니다속이 터질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떳떳합니다(11) 하나님께서 아시느니라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을 아신다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처음 나누었던 (2) 열심 단어로 돌아가 봅시다.

바울만큼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는 열심히 일하고 세운 공()을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고 높여주기를 은근히 기대합니다.

남이 나의 수고를 알아주지 않을 때혹은 나의 의도가 다른 이의 의도와 충돌할 때 억지를 부립니다. 서운하다고 합니다.

인간의 당연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열심은, 뜨거운 마음은, 질투하기까지 타오르는 마음은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그 마음은

모든 것을 이깁니다. 끝내 승리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열심, 뜨거운 마음, 질투하는 마음을 가지고 교회를 섬기는 저와 여러분에게

우리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 승리의 행진에 동참하는 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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