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은 참으로 불편한 이야기입니다.
북이스라엘 왕 아합, 그의 아내 이세벨, 그리고 한 평범한 사람 나봇의 이야기입니다.
이땅에서 종종 발생하는 ‘불의와 부당함’의 실체를 오늘 말씀 속에서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씀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는 이유는
“그 모든 불의 너머에서 일하고 계신 하나님의 주권”을 우리에게 선명히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자,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1절을 보시면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이스르엘에 포도원이 있어 사마리아에 사는 아합의 왕궁에서 가깝더니...” (1절)
그 후에,,, 이건 무슨 일 이후입니까?
아합이 아람왕 벤하닷과의 두 번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한 이후입니다.
승리후 겸손해야 될텐데, 전쟁에서 승리를 하자 하나님의 은혜는 온데간데 없고
자기 맘대로 벤하닷을 살려준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자를 통해 아람왕 벤하닷대신 아합왕이 죽게 될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그래도 회개하지 않고, 벌이고 있는일입니다.
자기는 그만큼 큰 땅을 가지고 북이스라엘이 자기가 다스리는 나라인데..
그 별궁 옆에 있는 나봇의 포도원, 그게 탐이 난 겁니다.
그래서 제안을 합니다.
“내가 너에게 더 좋은 포도원을 줄게. 아니면 원하는 만큼 돈으로 줄게.”
참 합리적인 제안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나봇의 대답은 단호합니다.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3절)
여러분,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나봇이 거절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신앙 양심의 결정입니다.
레위기 25장 2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나그네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이스라엘 땅은 맘대로 자기 소유처럼 사고 팔수가 없게 되있다.
땅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신앙은 때로 거절하는 용기에서 드러납니다. 특히 요즘 시대에 거절이 쉽지 않죠.
회사에서는 비합리적인 요구가 올 때가 있고, 사회에서는 진리를 왜곡하는 압박이 쏟아질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세상은 말합니다. “좀 융통성 있게 살아라. 그렇게 까다롭게 구니까 손해 보는 거야.”
하지만 성도 여러분, 믿음은 불순종의 시대 속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배우는 길입니다.
거절이 두려워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거절할 수 있는 신앙의 힘을 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다 예스라고 할 때, 노라고 말할 줄아는 그리스도인"
나는 무엇 앞에서 멈출 수 있는가?”
하나님 말씀 앞에서, 주권 앞에서 멈출 줄 아는 사람.
나봇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아합은 이 나봇의 단호한 거절 앞에서 상심합니다.
얼마나 마음이 상했는지… 침상에 누워 밥도 안 먹어요.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이키고 식사를 하지 아니하니...” (4절)
말이 좋아 근심이지, 사실은 분노와 짜증이었죠.
‘내가 왕인데! 저 백성 하나 말 한 마디로 굴복시키지 못하다니!’ 들어누웠다.
이 모습을 보고 누가 등장하죠? 바로 아내 이세벨입니다.
“당신이 이스라엘의 왕이 맞습니까? 왜 저런 사람 하나 처리하지 못하고 삐쳐 있습니까?
내가 그 포도원 갖게 해드릴 테니 일어나 밥이나 드세요.”
여기서 이세벨의 말이 무서운 건, 그녀는 왕이 갖지 못한 권한을 마음껏 휘두릅니다.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힘과 권력은 책임입니다.
이것이 책임이 아니라 특권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결국에 그 힘으로 죄없는 한 사람을 사지로 몰아갑니다.
나봇이 살고 있는 성읍의 장로들에게 보냅니다.
편지 내용이 뭡니까?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앞에 앉히고, 거짓 증인 두 명을 세워서
‘이 사람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라고 말하게 하라. 그리하여 그를 돌로 쳐 죽이라.”
‘탐욕은 혼자 오지 않습니다.’
그 뒤에는 반드시 거짓 조작이 따르고, 공의가 뒤틀리고,
무고한 자의 피가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에 이렇게 말씀하죠.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안타깝게도 결국 나봇은 돌에 맞아 죽습니다.
누명과 조작, 왕의 권력, 종교적 위선이 그를 삼켜버렸습니다.
누가봐도 불의가 승리하는 듯 보이지만
내일 함께 살펴볼 것이지만, 하나님은 이 장면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17절 이하에 보면 선지자 엘리야가 다시 등장합니다.
그는 아합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전합니다.
“네가 나봇의 피를 흘리게 했으니,
그 피를 흘린 그 자리에서 너도 피를 흘릴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훗날 정확하게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때론 늦어 보이고, 조용해 보이지만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일어납니다.
예수님도 억울한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거짓 증인들이 나서고, 조롱받고, 침뱉음을 당하고, 결국 십자가에 매달리셨죠.
하지만 하나님은 그 죽음에서 부활의 승리를 이끌어내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삶에 나봇과 같은 억울함이 있습니까?
답답한 현실, 거짓된 권력, 부당한 구조 속에서
“왜 하나님은 가만히 계십니까?” 묻고 싶을 때가 있습니까?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에서도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실현됩니다.
그분의 심판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십시오.
그분은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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