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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6일] 은혜에 반응하는 한 사람 (왕상 22:1-14)
 
[4월 26일] 은혜에 반응하는 한 사람 (왕상 22:1-14)
2025-04-25 17:00:00
최종운
조회수   15

오늘 우리는 북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마지막 전쟁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경고와 도전을 함께 나누려 합니다.

 

아합 왕, 참 유명한 왕이죠. 권력도 있었고, 업적도 있었고,

사람들 눈엔 성공한 왕처럼 보였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요, 성경은 그의 인생을 한 마디로 정리합니다. “악을 행한 왕이었다고요.

 

아합에게 하나님은 어떤분이신지 수차례 알려주셨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그런데도 그는 끝까지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첫째,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3년 반의 가뭄과 비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셨고,

둘째, 갈멜산 위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을 이기게 하시며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증명해주셨습니다.

셋째, 아람이 사마리아를 침공했을 때에도 이름 없는 선지자를 통해 이기게 하셨고,

넷째, 다시 아람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강탈한 후, 엘리야를 통해 하나님의 심판을 듣고 옷을 찢고 겸손해하자, 하나님은 그 심판을 다음 세대로 유보해 주십니다.

 

이렇게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베푸셨는데요,

아합은 결국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그는 은혜를 누리기만 했지, 내 삶에 은혜가 당연한것이어서 그렇다.

그런 자들은 은혜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수많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어떤 은혜를 주셨습니까?

내가 예수님을 믿는 은혜,

건강의 은혜, 가족의 은혜, 오늘도 이 새벽에 말씀을 듣는 믿음의 자리에 나온 은혜까지...

 

이 은혜가 당연한것입니까?

찬양의 가사처럼 당연한 것 하나 없다.

 

내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이 내가 당연하게 누려야 될것이라 생각하고

하나님의 은혜임을 반응하지 않는다면,
그건 아합과 다를 바가 없는 겁니다.

은혜는 누리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내게 주신 은혜는 하나님께 감사로 반응합시다.

찬양으로 고백합시다.

헌신으로 고백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

이제 본문 22장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합은 아람과 평화조약을 맺고 3년이 지난 후, 다시 전쟁을 준비합니다.

이번엔 남유다의 여호사밧 왕까지 끌어들입니다.

왜요? 군사력 때문입니다. 숫자가 더 많으면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여호사밧 왕이요, 참 지혜로운 사람이에요. 뭐라고 하냐면,

전쟁 나가기 전에 하나님의 뜻부터 물어봅시다.”

그래서 아합이 선지자 400명을 불러옵니다.

그들이 하나같이 뭐라 그러냐면요?

올라가세요. 하나님이 성을 왕의 손에 넘기실 겁니다.”

전부가 똑같은 말이에요. 똑같이 길하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호사밧 왕이 묻습니다.

여호와의 선지자, 진짜 하나님 말씀 전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이게 무슨 뜻일까요?

지금 이 400명은 여호와의 선지자가 아니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낀 겁니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영적인 감각이 있는 사람은 압니다.

이건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라 사람의 말이라는 걸.

그래서 묻습니다. “혹시 진짜 여호와의 선지자, 아직 남아 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아합이 뭐라고 해요? 그제서야 실토한다.

한 명 있긴 한데, 미가야라는 사람인데,

그 사람은 나한테 늘 흉한 말만 해요. 그래서 듣기 싫어요.”

 

여러분, 이게 얼마나 심각한지 아십니까?

진짜 선지자가 있음에도 아합은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듣고 싶다는 거예요.

이게 바로 아합의 영적 상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우리도 은혜의 말씀’, ‘축복의 말씀만 들으려고 하지 않나요?

때로 강단에서 죄의 지적과, 우리의 마음을 찌르는 말씀,

회개의 말씀, 경고의 말씀은 외면하려 하지 않나요?

그렇다면 우리는 아합의 길을 걷고 있는 겁니다.

 

결국 여호사밧의 요청으로 미가야가 불려오게 됩니다.

그 전에 사자 하나가 미가야를 설득하러 갑니다.

미가야여, 다른 선지자들이 다 좋은 말을 했으니,

당신도 좀 말 조심하세요. 분위기 맞춰 주세요.” (13절 요약)

 

이게 뭡니까? 권력 앞에 말씀을 맞춰 말하라는 겁니다.

요즘 시대에도 비슷한 유혹이 있습니다.

교회가 권력에, 인기 여론에, 정치인들의 요구에, 조직 논리에 맞춰 복음을 희석시키는 겁니다.

말씀을 적당히 부드럽게, 편하게, 자극 없이...’

 

하지만 미가야는 어떻게 말합니까?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 (14)

 

이게 선지자의 정체성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해야 합니다.

사람이 듣기 좋아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말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

그래서 때로는 거부당하고, 오해받고, 심지어 감옥에 가더라도

말씀 앞에서 타협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 참 선지자입니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그것만 말하리라.”

이게 참 선지자입니다. 이게 사명자의 태도입니다.

 

말씀을 가감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그 말씀만 전하는 사람.

오늘날 목회자 된 우리도, 이런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사람들의 기분에 맞추는 설교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말씀만을 선포하는 사명자의 태도.

이 마음 갖기를 위해서 성도님들 기도부탁드립니다.

 

, 여기서 두 인물이 선명하게 대조됩니다.

아합: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

미가야: 불편해도, 외로워도, 하나님의 뜻만 전하는 사람

 

성도 여러분,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며 사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아합처럼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교회 공동체는 어떻습니까?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은 불편하다고 외면하고,

위로의 말씀, 복 주신다는 말씀만 붙잡고 있지는 않습니까?

 

믿음은 은혜를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은혜에 반응해야 합니다.

믿음은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듣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는 우리가 선택해야 할 때입니다.

은혜에 반응하지 못한 아합의 길을 갈 것인지,

은혜에 순종한 미가야의 길을 걸을 것인지 말입니다.

 

말씀이 내 생각을 통제하고,

말씀이 내 욕망을 제어하고,

말씀이 내 길을 인도하는 삶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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