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말씀에
아합왕이 남유다 여호사밧왕과 함께 아람을 치러가기전에
여호사밧왕이 신앙인답게 “전쟁 나가기 전에 하나님의 뜻부터 물어봅시다.”
그래서 아합이 선지자 400명을 불러옵니다.
그들이 하나같이 뭐라 그러냐면요?
“올라가세요. 하나님이 성을 왕의 손에 넘기실 겁니다.”
전부가 똑같은 말이에요. 똑같이 ‘길하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호사밧 왕이 묻습니다.
“여호와의 선지자, 진짜 하나님 말씀 전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지금 이 400명은 여호와의 선지자가 아니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낀 겁니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영적인 감각이 있는 사람은 압니다.
‘이건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라 사람의 말’이라는 걸.
그래서 묻습니다. “혹시 진짜 여호와의 선지자, 아직 남아 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아합이 “한 명 있긴 한데, 미가야라는 사람인데,
그 사람은 나한테 늘 흉한 말만 해요. 그래서 듣기 싫어요.”
이 미가야라는 선지자...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 그 길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외면당하고, 오해받고, 심지어 감옥에 갇히는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을 살리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진리를 말할 것인가, vs 침묵할 것인가.
말씀을 따를 것인가, vs 외면할 것인가.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삶의 방향을 점검하고,
하나님 앞에서 다시 한번 결단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합 왕은 남유다의 여호사밧 왕과 동맹을 맺고 아람과 전쟁을 준비합니다.
그는 전쟁 전에 하나님의 뜻을 묻는 형식을 갖추기 위해 선지자 미가야를 부릅니다.
그런데 미가야가 나타나자 아합은 묻습니다.
"우리가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 싸울까요, 말까요?"
미가야의 대답이 참 특이합니다. 처음엔 마치 조롱하듯이 대답하죠.
"올라가십시오. 승리하실 겁니다." (22:15)
겉으로는 긍정의 메시지처럼 보이지만,
말투와 태도에서 진심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합도 그걸 알아챕니다.
그래서 다시 따집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진실하게 말하라.“
얼마나 아합이 모순적입니까?
그는 제대로된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싶어 합니다.
말씀을 '의식'은 하지만, 말씀을 '기준'으로 삼지 않습니다.
이런 태도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흔히 나타납니다.
성경을 읽고, 예배에 참석하고, 기도는 하지만,
정말 내 삶의 결정에서 말씀을 내 삶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가?
말씀은 나를 이끄는 방향, 나침반입니다.
우리가 진짜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오늘 이 본문을 통해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1. 말씀은 불편할 수 있지만, 그 말씀이 생명입니다 (19-23절)
결국 미가야는 진심을 말합니다.
"내가 보니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 같이 산에 흩어졌더라."
이건 아합이 죽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을 들은 아합은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미가야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하늘에서 본 영적인 비전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아합을 심판하시기 위해 거짓 영을 보내셔서
그가 데리고 있는 400명의 선지자들 입에서 거짓이 나오게 하셨다는 것이죠.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거부하고, 무시하고, 외면할 때,
결국은 거짓을 진리로 믿게 되는
무서운 심판이 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마음의 정욕대로 내버려두사...“
하나님의 심판은 때로 침묵이라는 방식으로,
때로는 오히려 원하는 것을 주는 방식으로 임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민감해져야 합니다.
우리가 듣고 싶은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2. 말씀 전하는 자는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24-28절)
미가야가 진실을 말하자,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선지자 시드기야가 화를 냅니다.
그는 미가야의 뺨을 때리며 말하죠
.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가서 네게 말씀하셨느냐?" (24절)
누가 진짜 일까요?
사람들은 미가야의 말을 믿지 않고, 오히려 거짓된 다수의 말을 신뢰합니다.
뺨을 치면서 하나님의 영이 나와 함께하는데
너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은 가짜다.
결국 아합은 미가야를 감옥에 가두라고 명령합니다.
"이 사람을 옥에 가두고,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로 먹이라." (27절)
하지만 미가야는 어떻게 합니까?
끝까지 물러서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선언합니다.
"왕이 참으로 평안히 돌아오시게 되면, 여호와께서 나를 통하여 말씀하지 아니하셨나이다." (28절)
왕이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면
내가 말한게 거짓이 되는 셈입니다.
반대로 – 내말이 진짜라면, 당신은 거기서 죽게될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회유를 하고 400명의 편에 서라 설득했다.
결국 그는 거절하고 감옥에 들어간다.
그럼에도 자신이 고통당할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듭니다.
왜요? 그 말씀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진리는 외면당할 수 있습니다. 거부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결코 꺾이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미가야와 같은 결단이 필요합니다.
먼저 저부터 말씀을 전하는 자리, 진리를 선포하는 자리는
때로 환영받지 않습니다.
또 교회 안에서도, 사회 속에서도,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도전이 따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말씀을 붙들고, 외로워도 그 길을 걸어야 합니다.
혹시 나는 말씀을 듣고도, 불편하다는 이유로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은가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말씀 앞에, 나는 정말 반응하고 있는가요?
오늘, 우리가 미가야처럼 말씀에 민감한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듣고 싶은 말이 아니라, 들어야 할 말씀에 반응하는 성도 되기를 소망합니다.
번호 | 제목 | 설교자 | 등록일 | 조회수 | 첨부 파일 |
---|---|---|---|---|---|
2654 | [5월 10일] 순종은 생명의 길로 이어집니다. (왕하 1:13-18) | 최종운 | 2025-05-09 | 7 | |
2653 | [5월 9일]말씀은 통제가 아니라 순종의 영역입니다. (왕하 1:1-12) | 최종운 | 2025-05-08 | 6 | |
2652 | [5월 8일] 끝까지 하나님을 따르는 자 (왕상 22:41-53) | 최종운 | 2025-05-07 | 6 | |
2651 | [5월 7일] 하나님 안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교회 (고후 13:1-13) | 전소리 | 2025-05-07 | 10 | |
2650 | [5월 6일] 교회를 섬기는 바울의 마음 (고후 12:11-21) | 전소리 | 2025-05-06 | 7 | |
2649 | [5월 5일] 내가 아닌, 오직 주님이 드러나는 삶 (고후 12:1-10) | 전소리 | 2025-05-05 | 6 | |
2648 | [5월 3일] 전교인월삭새벽기도회 | 최종운 | 2025-05-03 | 8 | |
2647 | [5월 2일]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왕상 22:29-40) | 최종운 | 2025-05-01 | 7 | |
2646 | [5월 1일] 우직하게 진리를 붙드는 한 사람 (왕상 22:15-28) | 최종운 | 2025-04-30 | 11 | |
2645 | [4월 30일]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고후 11:16-33) | 손병호 | 2025-04-30 | 12 | |
2644 | [4월 29일] 자랑인가, 사랑인가 (고후 11:1-15) | 손병호 | 2025-04-29 | 13 | |
2643 | [4월 28일]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고후 10:1-18) | 손병호 | 2025-04-28 | 17 | |
2642 | [4월 26일] 은혜에 반응하는 한 사람 (왕상 22:1-14) | 최종운 | 2025-04-25 | 15 | |
2641 | [4월 25일]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왕상 21:11-29) | 최종운 | 2025-04-24 | 18 | |
2640 | [4월 24일]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자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왕상 21:1-10) | 최종운 | 2025-04-23 | 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