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새벽 우리는 열왕기상 21장의 말씀을 통해,
나봇의 포도원 사건의 결말과 하나님의 심판,
그리고 너무도 의외의 하나님의 반응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나봇의 죽음을 다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이 나봇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포도원을 하나님 앞에서 소중히 여겼고,
왕이 그것을 팔아라했을때도 그것을 팔 수 없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합은 그 땅을 탐냈고,
아내 이세벨은 거짓된 방법으로 그를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습니다.
이세벨이 조서를 내린다.
11절 그의 성읍 사람 곧 그의 성읍에 사는 장로와 귀족들이 이세벨의 지시 곧 그가 자기들에게 보낸 편지에 쓴 대로 하여
장로들과 귀족들이 왕비의 편지를 받자마자 아무런 항의도 없이
그대로 따르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봇을 성읍밖으로 끌고 가서 돌로 쳐죽였다.
이 사건이 불편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너무나 선한 자가, 아무 죄도 없이 죽는다는 겁니다.
더구나 그를 죽이는 사람들이 누구예요? 한 나라의 힘과 권세를 가진 왕과 왕비입니다.
또 그 말에 항의없이 동조한 성읍의 장로들과 귀족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침묵한 백성들입니다.
공동체 전체가 침묵할 때, 죄는 더 깊고 더 넓게 번져갑니다.
지도자의 악함도 문제지만,
그 주변이 아무 말 없이 동조할 때, 그 죄는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너는 권력 앞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고 있느냐?”
때로 정의가 짓밟힐 때, 나는 침묵하는 쪽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붙드는 쪽인가?
사랑하는 여러분,
나봇의 죽음은 단지 한 사람의 억울한 죽음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정의가 무너질 때 하나님의 백성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를
묻는 사건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들은 죄에 대해 침묵하고 있어도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엘리야 선지자에게 임합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아합에게 가서 선포하죠.
19절 너는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사건을 정확히 보고 계셨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은 아합의 반응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20절에서 아합은 엘리야를 보고 이렇게 말하죠.
“내 대적자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
아합은 엘리야를 대적자로 한다.
‘자기 인생을 망치러 온 사람’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준비가 안 된 사람은,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원수처럼 여깁니다.
그래도 엘리야는 왕앞에서 두려움 없이 말씀을 전합니다.
아합과 그의 집에 임할 무서운 심판을 조목조목 선언합니다.
그 심판은 아합 개인에게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의 자손들, 그와 연합한 이세벨, 그를 따르는 사람들 모두에게 미치는 전면적인 심판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 죄를 한 개인에게 묻지않나?
죄는 언제나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합의 죄는 단순한 ‘탐욕’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고, 우상을 섬겼으며, 사회적 약자를 희생시켰습니다.
그 죄는 사회적인 죄, 구조적인 죄가 되어서 이땅에 가난하고 소외받고 억울한자를
낳게 되어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면서도 종종 그분의 ‘공의’를 놓치고 삽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분이지만,
그 참으심을 마냥 모든 것을 참고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나봇이 죽은 사건, 그의 포도원을 탐낸 일, 이세벨이 꾸민 거짓 증언의 계략,
성읍 사람들의 동조까지 하나님은 다 보고 계셨어요.
그리고 드디어 그 공의를 드러내십니다.
아합에게는 “네 피를 개들이 핥을 것이다.”
이세벨에게는 “그녀의 시신은 성읍 곁에서 개들이 먹을 것이다.”
그리고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당하게 하신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이뤄집니다.
때로 우리가 보기엔 너무 늦은 것 같아 보여도, 하나님은 반드시 그 날을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그 때에 맞게, 그 방법으로 심판하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기억하신다는 겁니다.
자, 여기서부터가 오늘 말씀의 핵심이자 가장 불편한 부분입니다.
아합이 엘리야의 선포를 듣고 놀랍게도 회개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27절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또 풀이 죽어 다니더라.
옷을 찢고, 굵은 배를 입고, 금식하고, 풀이 죽은 자세로 다닙니다.
하나님은 그 모습을 보시고 엘리야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보았느냐?
그러므로 내가 그의 시대에는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고,
그의 아들의 시대에야 그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이게 너무 이해가 안간다. 하나님이 너무 쉽게 넘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잖아요.
아합왕은 진정한 회개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회개가 진정한 열매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심판을 연기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엿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시기보다 용서하시기를 더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누군가 돌아오기만 하면 그분은 품어주시고 기다리십니다.
악한 자의 멸망보다 그가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비록 그 회개가 완전하지 않고, 이후 그 삶이 변하지 않았을지라도
하나님은 잠시라도 겸손한 모습을 보이면, 마음을 여십니다.
하물며 우리가 진짜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간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세 가지를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억울한 자의 죽음을 그냥 넘기지 않으십니다.
나봇은 이 땅에선 억울하게 죽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기억하시고, 결국 정의를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때로 늦어 보이고, 느리게 오지만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또 하나, 하나님의 긍휼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큽니다.
아합과 같은 사람도 잠시의 겸손함으로 심판을 유예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은 누구든지 돌아오기를 원하신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은 ‘침묵하는 성읍 사람들’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봇처럼 진리를 붙들고, 엘리야처럼 외치며, 하나님처럼 긍휼을 품는 한 사람이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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