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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7일] 사랑하는 이를 향한 중보기도 (엡 3:14-21)
 
[6월 17일] 사랑하는 이를 향한 중보기도 (엡 3:14-21)
2025-06-17 03:23:26
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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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트로) 오늘 본문은 어제 말씀에 이어서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며 중보하는 기도문 형태의 말씀입니다. 바울이 3장의 전반부를 단순히 자신의 처지를 알리고자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온전히 드러내려는 이유로 현재 갇혀 있음에도 밝게 빛나는 주님의 사랑을 말하고자 했습니다. 

이제 바울이 교회를 향해 어떤 마음을 담아 기도를 하였는지 살펴보며 우리 또한 우리교회를 향한 사랑의 마음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오늘 새벽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제 본문을 잠깐 다시 상기시켜보면, 3장 전반부에서 바울은 주 안에서 성도가 된 유대 출신 성도와 이방인 출신 성도 간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 될 것을 강조했습니다. 유대인 성도들은 이방인 성도들에게 복음을 허락해주시고 한 몸으로 인정해주신 하나님의 경륜을 자신과 같이 순종해야 함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옥중살이를 하는 교회의 영적 리더인 바울의 상황을 듣고 염려 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이 지극히 작은 자를 통해서 큰 영광 받으시는 주님을 신뢰하도록 권면했습니다. 이제 그는 몇 가지 간구의 기도문을 중보의 대상인 성도들에게도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사명대로 살아가는 성도로서 무엇을 간구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바울은 에베소의 성도들을 위하여 중보기도합니다. 그 기도의 첫 번째 간구를 살펴보려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무릎으로 기도하는 바울(14-15)

14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바울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선언하는 기도로 시작합니다. 그는 에베소 성도들의 갈등의 상황을 모두 다 알고 계시며 이 모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지으신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결코 편지의 수신자인 성도들을 의식하며 가식적인 기도를 드리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기도문은 기도를 드리는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라, 기도를 가장한 성도들을 의식하며 자신의 할 말을 해버리는 불편한 편지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가 얼마나 성도들을 아끼고 사랑하는지를 하나님 앞에서 무릎꿇고 기도하고 있음을 기도의 시작부분에서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중보기도는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하여 하는 기도이지만, 그 기도를 진정으로 들으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해야 합니다. 그 기도를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다는 확신 속에서 타인의 삶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간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인데, 때론 그 기도의 분명한 목적이 상실한 채 자신의 속상한 마음만 토설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진정으로 응답받는 중보기도가 되려면 나의 기도를 응답해 주실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나아가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바로 나의 모든 상황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나의 문제, 혹은 누군가를 위해 중보할 때 내 시선과 판단으로 먼저 선입견을 가지고 기도로 나아간다면, 그것은 어쩌면 이러한 나의 시선 때문에 그 기도가 하나님께서 온전히 받지 못하시는 기도가 될 수 있음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내 판단을, 내 결정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라는 투쟁이 될 뿐입니다.

그렇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절대 복종의 자세인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 낮아져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는 이를 위한 진정한 기도가 시작됩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가 이처럼 진정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분을 인정하고 낮은 자의 마음으로 무릎을 꿀고 간구하며 온전히 응답받는 새벽 되시기를 바랍니다. 

 

 

무릎기도1. 성도의 속사람이 강건하기를 중보하라(16)

계속해서 바울은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기도의 첫 번째 간구로서 속사람의 강건함을 위한 기도를 올려드립니다. 바울의 기도에 담긴 속사람의 강건함은 예나 지금이나 모든 사람들이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내면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일이 아무리 인간적인 노력을 해도 쉽게 되지 않는 일입니다. 당장 오늘 이 시간을 뒤로하고 삶의 자리에 가서 마주하는 모든 일들은 나의 속사람을 완악하게 만드는 일들 뿐입니다. 내면을 온전히 가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아무리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자녀일지라도 속상하게 만드는 순간들이 왜 그리 많은지 모릅니다. 부부 간의 아주 사소한 대화 속에서도 서로의 마음을 긁을 때가 있고 서로가 하는 행동 하나에 부딪치게 됩니다. 가까이 오래 지내는 이들과 함께 잘 지내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데, 이런 관계 속에서 진정으로 서로를 위해 중보해 주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나와 오래 있어주고 함께 지내는 이들은 내가 사랑하는 이, 혹은 나와 아주 중요한 일을 하는 관계일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 이들을 사랑하는 방법으로서 오늘 바울은 상대방에 삶에 하나님께서 친히 그 사람의 삶에 개입해주셔서 그분의 영광과 풍성함을 성령께서 허락해 주심으로 진정 속사람이 강건하도록 해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무릎기도2.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기를 중보하라(17)

바울은 이어서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기를 믿음으로 간구합니다. 

17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성도들의 마음에 예수님이 늘 내주하시는 사람은 주님과 연합한 성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자 비유에서 마음을 네 가지 밭으로 비유하신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길가, 돌밭, 가시밭, 좋은 밭 이렇게 네 가지 마음입니다. 길가와 돌밭, 가시밭은 씨았이 뿌려지지만 씨가 온전히 뿌리내리지 못합니다. 그런데 오늘 바울이 말한 것과 같이 그 마음에 주님이 거하시면 그 마음이 길가와 같이 말씀을 들어도 꺠닫지 못하는 일이 없습니다. 주님이 거하시면 돌밭과는 다르게 환난과 박해도 이겨냅니다. 주님이 거하시면 가시밭과는 다르게 쾌락과 욕심에서 자유하게 됩니다. 주님이 거하시면 아름다운 열매로 가득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거하시면 그 마음엔 사랑으로 뿌리가 깊이 박힌 나무가 자라고 터가 견고할 것입니다. 

다른 방법은 진정한 사랑을 경험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이 계실 때에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나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주님의 사랑이 매 순간 나의 마음을 주장하도록 주님께만 우리 마음을 내어드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무릎기도3.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충만한 사랑을 간구하라(18-19)

바울은 그러므로 인간의 지식에 의존하였던 이전의 삶이 아닌 그리스도가 내 안에 거하신다는 그 믿음이 제대로 작동하여 완전한 사랑이 충만히 임하는 에베소의 모든 성도가 되기를 간구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속사람을 강건케 하고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계심을 믿으며 측량할 수 없는 그분의 충만한 사랑을 우리가 매일 매일 경험하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사랑을 주려면 그 사랑이 우리 안에 충만해야 합니다. 사랑을 경험해 보지 못하고서 그 사랑을 준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사랑을 모르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리고 이미 그 사랑을 우리가 다 경험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그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는 그 사랑 안에 거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로서 하나님 사랑의 그 충만이 온 성도안에 담겨지기를 바라며 중보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이렇게 기도함으로 교회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의 기도가 끊어지지 않고 게속되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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