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트로) 사도바울은 4장 1절에서 말하고 있는 부르심 받은 성도로서 합당하게 살아가는 삶을 교회 내부에서는 서로 연합(3절)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야 함(13절)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교회 밖에서는 세상 질서와 정신에 물들지 말아야 한다(14절)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오늘 이어지는 본문을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부르심 받은 자들이 이전과는 어떻게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서신을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주님이 복음으로 해산의 고통을 통해, 주님 안에서 하나 된 자들의 모임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이 삶은 이전과 어떻게 달라야 하지? 즉 새롭게 되어야 할 삶의 영역은 어떤 것이 있는가? 라는 질문을 가져야 교회로서 주님처럼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허망한 것 뿐인 세상에서 어떻게 주님처럼 살수 있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의 뜻을 온전히 발견하기를 소망합니다.
1.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허망한 삶을 살아갈 뿐입니다(옛 사람) (17-20)
바울은 중요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에베소 성도들이 바울을 만나기 전, 즉 주님을 몰랐던 그 시절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방인 출신이었던 성도들이 지금은 그때와는 정 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줍니다. 17절에서 바울은 주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처럼 살지 말라고 강하게 명령합니다. 그러면서 18절에서 저 세상에 속한 자들은 그 마음에 주님을 믿는 믿음이 없기에 허망한 삶을 사는데, 그 실상을 드러냅니다. 18-19절입니다.
에베소서 4장 18-19절: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하나님을 모르는 삶을 이토록 그 인생과 영혼을 죽음이라는 종착점으로 몰아갑니다. 이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냐면, 아무리 내가 무엇을 잘 하는지 발견하고자 애를 쓰고, 공부를 하고, 지식을 쌓아 나는 이것을 잘합니다. 나는 이러한 사람입니다, 라고 온갖 자격증과 학위로 자신을 증명하려 해도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스스로 정의 내리지 못하는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주님을 모르는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이방인의 삶은 허망하고 비극적인 삶입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알기 위해서 이토록 발버둥을 쳐도 안타깝지만 이 세상의 지식으로는 정체성을 온전히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모르는 인생은 허망한 삶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완전한 단절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하나님을 만난 자들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도록 서로를 위해 중보하는 이 새벽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바울이 강하게 명령하는 이유는 성도들을 염려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지식이 반드시 성도들을 그렇게 이끌 것이기에 강한 확신 속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가 주님을 떠나 사는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결국 우리를 다시 견인하시고 죽음이 아닌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실 분은 우리 주님이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인생은 곧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지식이 그 안에 있음을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반드시 믿게 됩니다. 아무리 그 주님을 거부하고 밀어내려고 안간 힘을 써도 그 노력은 주님을 믿지 않는 삶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더 주님을 가까이서 마주하게 되고 결국 주님 앞에서 믿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인생은 믿음 없는 삶과 믿음 있는 삶으로 구분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은 예수를 알면서 생겨납니다. 저와 여러분의 믿음의 근원 되시는 그 주님을 우리가 더욱 더 선명하게 말씀을 통해 알고 그분만을 바라보는 신앙생활이 온전히 이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우리가 주님을 배우고 믿어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21-24)
바울은 성도들이 주님을 믿음이 생겨나도록 해준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으로 성도들은 새 사람을 입은 자들이라고 그들의 정체성을 설명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우리가 믿음의 지식, 진리이신 예수를 듣고, 가르침을 받았고,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고 말하는 본문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옷을 입었다고 해서 삶의 모습, 행동, 생각마저 바뀌었는가? 라면 오늘 바울이 이렇게 기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은 앞서 20절까지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허망한 삶일 뿐이라고 말했는데, 성도들의 정체성 신분은 바뀌었지만 삶의 모습은 여전히 아직 세상과 같은 삶을 산다고 지적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세상저인 유혹과 욕심을 따랐던 옛 습관을 벗으라고 강조합니다. 이 바울의 권면이 서신으로 기록되어 전해졌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이 편지를 읽고 또 읽어서 성화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주님으로부터 배운 대로 가치관을 새롭게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욕망을 조정하고 몸에 진리를 계속해서 새겨야 합니다. 그래야 진리가 몸에 베이는 것입니다. 주님을 모를 때는 내가 원하는대로 살면 되었고 나의 입장에서 내가 만족을 하기 위한 세상 것에 예민하게 반응했지만, 주님을 믿고 새사람이 되었을 때에는 새로운 영적인 감각, 거룩함을 위한 감각들을 장착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주님을 따르는 삶과 그 생각을 가질 수 없습니다. 새로운 영적 근육을 형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를 주님을 닮지 못하게 하는 내가 아직도 버리지 못한 구습이 있습니까? 이 새벽에 주님 앞에 내어드리고 더욱 더 주님을 사모하고 주님을 닮겠노라 고백하는 이 새벽 되시기를 우리가 서로를 위해 중보하기를 원합니다.
3. 세상은 허망하지만 주님처럼 살아가는 삶 (25-32)
이제 바울은 옛 습관과 새로운 습관을 비교하며 하나씩 하나씩 새로운 삶을 살도록 제시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새로운 정체성이 생겼으니 아무리 몸이 옛 습관을 기억하더라도 새뤄워져야 한다는 고백이 입술을 통해 나옵니다. 나는 이제 새로운 삶을 살겁니다! 이전에 내가 말로 당신을 정죄했다면 이제는 점점 당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며 사랑하고 싶습니다. 나를 지켜봐주십시오! 내가 아무리 내 상각이 옳다고 해서 당신의 잘못을 지적하고 화를 냈더라면 이제는 내가 당신을 진정으로 위하는 마음이 담긴 말을 하겠습니다. 이러한 구체적인 훈련 과정에 돌입해야 한다는 것을 바울은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갖고 있던 온갖 악한 모든 행동들의 근원은 우리 안에 이제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 삶에 들어오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선한 마음과 행동을 시작할 수 있는 새로운 근원을 가졌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우리에게 여전히 옛습관이 남아 있더라도 더 이상 그 습관은 힘이 없습니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의 마음으로 누군가를 품는다면 그를 향해 하는 모든 것은 이전의 악한 행동과 말보다는 점점 더 주님을 닮은 선한 말과 행동 사랑이 담긴 모든 행동으로 변화되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처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으로 우리 주님께서 만들어 가실 줄로 믿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사랑하고 아끼는 이들 중에 주님을 모르는 분들이 있을 것인데, 그분들에게 우리가 주님을 먼저 믿는 자들로서 주님을 삶으로 보여주고 이 길이 올바른 길이라고 보여주는 이정표 같은 모습을 보여줘야 할 줄 믿습니다. 이것이 세상 속에서 주님처럼 살아가고 주님처럼 사랑하는 삶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하고 오늘도 그 사랑을 실천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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